오피니언 취재일기

민노총, 집안 단속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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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개선은) 힘으로 강제할 수 있을 텐데 (민주노총이) 힘이 안 돼서 못했다. 현장을 돌며 힘을 키워 투쟁하겠다."

이석행 신임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 위원장이 힘으로 밀어붙여 뭔가를 얻어 보겠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의 발언으로 대화 재개 가능성을 점쳤던 정부와 재계의 기대가 한번에 무너져 버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그래도…"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위원장은 현대자동차 노사 분규에 대해서도 "언론이 왜곡 보도했다"며 노조를 두둔했다. 일반 국민은 물론 현대차 노조원과 그 가족들까지 비판했던 것과는 한참 어긋나 있다.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두둔한 현대차 노조의 파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다.

이 위원장은 또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지는 교섭은 의미가 없다"고까지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구미에 맞는 정부가 들어서야 대화하겠다는 의미다. 이수호 전 위원장이 강경파로부터 시너를 맞으면서도 노사정위 복귀를 시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전 위원장은 조합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을 바꾸려 했다.

민주노총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노조 내부에 있다. 선거 전날까지 투표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던 전국IT산업노조연맹의 박흥식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민주노총의 가장 큰 문제는 지도자가 비리에 연루되고, 조합원이 지도부를 불신하며, 줄파업으로 국민이 외면한다는 데 있다." 산별노조 위원장이 꿰뚫어 보고 있는 이런 문제를 이 위원장이 모를 리 없다.

이 위원장은 무엇이 조합원을 위하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다행히 그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으로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