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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걷기에 푹 빠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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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점심께 찾아간 그는 사무실 근처 공원길을 걷고 있었다.

"틈만 나면 걷는거지요.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걸으면 마음이 가라 앉고, 식사를 하고 난 뒤 걸으면 자연스레 소화도 되고… 걷다보면 세상도 새롭게 보인답니다."

이석환(58) 행정자치부 안전정책관은 '걷기'에 대한 지론부터 얘기를 펴 나갔다. 그의 건강론을 말하기 앞서 그의 이력부터 살펴보면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매운 고추의 고장이라는 '충남 청양군 남양면 구룡리' 시골자락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고교 입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어이없게 낙방한 그는 고향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결국 나이가 차 중졸 학력으로 1970년 입대, 강원도 화천에서 육군 군수행정병으로 복무하다 73년 제대한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3~4개월 책에 파묻힌 뒤 독학으로 그는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내친 김에 그는 '물먹은' 서울 땅에 다시 찾아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서울시의 9급 공무원이 됐다. 학업에 대한 '오기'(?)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그를 대학 야간 행정학부로 이끌었다. 주경야독이었다.

9급 공무원 생활 2년여만에 그는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합격했다. 이번엔 7급 시험이었다. 그의 첫 부임지는 경기도 양주군청 새마을과. 주사란 직함으로 2년여가 지난 79년에 그는 내무부로 자리를 옮겼다.

늦깍이로 시작한 공무원 생활과 격랑치듯 옮겨다니며 보낸 20대 후반의 인생이었다. 더욱이 시대는 10월 유신→육영수 여사 피습→10.26사태 등 한마디로 격변의 연속이던 때였다. 모든 게 스트레스의 연속이었고 조직 생화를 하느라 못마시는 술을 입에 대는 횟수도 점점 늘어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의 건강은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소주 한 병 정도는 쉽게 어울려 마셔야만 하던 시절이었죠. 하지만 술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인데다 몸은 부대끼고…그래도 조직사회라는 게 어디 개인의 특성이 용납되던 시대였나요?"

그 탓에 그는 위장약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만 했다. 툭하면 속이 쓰리고, 아프니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는라 건강검진은 커녕 치료조차 생각 못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그는 5년 전 이북5도 도민회의 사무국장 자리로 옮겨갔다. 조금이나마 한 숨 돌릴 수 있는 자리였다.평소 습관대로 한 모금의 담배를 피워물고 바둑을 두던 어느날, 그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

"한 숨 돌릴 수 있는 이 때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다. "지금이 아니면…". 안타까운 듯 건네는 의사의 충고덕에 그는 담배를 끊었다. 담배와 동반자였던 그의 오랜 취미생활인 바둑도 그 탓에 멀리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도 고쳐 먹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던 조바심을 버리고 "한번만 더 먼발치에서 돌아보자"는 느긋한 생각을 하자 마음의 여유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 덕에 그는 건강을 얻었다. 20년을 넘게 손에서 떼놓지 않던 위장약을 그는 이제 들고 다니지 않는다. 들쑥날쭉하던 그의 체중도 청년기 건강체중이었던 65㎏로 되돌아왔다.

오히려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다보니 그의 인기도 올라갔다. 그는 지난해 7월과 올 1월 두번에 걸쳐 행자부 공무원직장협의회로부터 베스트간부공무원에 선정됐다. 행자부에선 유일하게 비고시(考試) 출신 국장급 간부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도 그다.

"걷는다는 거요. 느림의 미학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조마조마하면서 인생을 살기 보다 조금 더디지만 느긋한 마음의 여유를 얻고, 판단이 서면 과감히 달릴 수 있는 워밍업이 되니 이만큼 좋은 삶의 활력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얘기를 듣던중 아내에게서 날아온 문자메시지-."저녁에도 웃읍시다". 오전 6시 일어나서 한시간과 퇴근후 한 시간은 그와 그의 아내가 함께 걷는 시간이다. "완벽을 바라는 건 어렵죠. 남을 배려하려면 여유를 가져야 하고, 그러면 건강과 행복도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의 건강생활 신조다.

프리미엄 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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