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는 너무 서두르는 게 탈|잠자코 기다리면 될 터인데… 박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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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7면에서 계속>
김형욱의 JP봉쇄작전이 얼마나 지독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65∼68년 방첩부대장을 지냈던 윤필용씨(육사8기)같은 증언자는『김부장이 사람을 시켜 JP를 죽이려고까지 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청와대 비서실」7회).
JP캠프의 일원으로 당직을 맡았던 Q씨는『박대통령은 모든 걸 짐짓 모르는체 했다』며 이런 사연을 들려주었다.
『3선개헌이 한창 시끄러웠던 69년 봄인가, 하루는 박 대통령이 나를 불렀어요. 그때 JP는 68년5월 정계 은퇴를 선언해 버리고 야인으로 있었지요.
아침식사를 같이 하는데 박대통령이 불쑥 내 앞으로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며「이거 봤어 라고 물어요. 내가 「정보부 보고서군요」하니까 박 대통령은「이것 좀 봐. 김종필 그 친구 일본 가서 무슨 이야길 하고, 미국 가서는 뭐라고 했는지 다 적혀있어. 그 친구는 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나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거야」하면서 화를 벌컥 내더라고요.

<청구동 감시 철저>
박 대통령은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님자 혼자만 청구동 출입한다면서」라고 꾸짖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네 각하, 저녁때도 가고 낮에도 갑니다. JP가 외로울 것 같아서요. 각하도 대체 저는 어떡해야 합니까. 각하도 JP도 저하고는 보통 인연이 아닌데…. 그리고 JP가 각하에게 남이 아니질 않습니까. 목숨걸고 혁명한 사이인데다 조카사위 아닙니까. 그런 JP하고 내가 모여서 각하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수군거릴리가 있겠습니까」라고 했지요.
눈치를 보니 박 대통령이 조금 물러서는 것 같아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갔죠. 나는 서류뭉치를 가리키며「각하 저 따위 것 볼 필요 없습니다. 전부 김 의장에 대한 모략입니다」라고 했죠. 그리고는「각하 김 의장이 글쎄 변비에 걸렸습니다」라고 말을 바꿨어요.
그랬더니 박 대통령은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기냐 싶던지 「아니 도대체 왜」라고 물어요.
내가「김 부장이 부하를 시켜 얼마나 감시하고 미행하는지 김 의장이 옴짝달싹 할 수 없습니다. 밖에는 커녕 2층에서 1층도 못 내려올 정도예요. 운동을 할 수 없으니 변비가 생길 수 밖에요」라고 밀어붙였죠.
참 박대통령 그분 대단한 사람이에요.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닐텐데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전화로 김 부장을 부르더라고요. 박대통령은「님자는 도대체 청구동을 왜 그렇게 감시하는 거야. 김 의장이 운동을 못해 변비가 걸렸다는데…」라면서 꾸짖더군요』
이 무렵 중정의 청구동 감시는 여느 정보공작만큼이나 치밀했던 모양이다. JP라인으로 당 사무총장(64년)까지 지내다 개헌반대로 제명됐던 예춘호씨(6·7·10대의원)는 이렇게 증언했다.
『69년 7월29일 공화당의원들이 장충동 영빈관에 모여 개헌대토론을하고 있였지요. JP하고 나, 그리고 양정직씨 세 사람은 청구동에 있었어요. JP는 68년5월 탈당하면서 의원직까지 내놨고 나하고 양 의원은 이미 제명 당한 처지라 의총엔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토론이 어떻게 되고있나 궁금해하는데 JP 비서관 김 모씨가 우리더러 수화기를 들어보라고 해요. 내가 집어들었더니 글쎄 의원총회에서 발언하는 게 마구 튀어나오는 거예요. 나는 누가 장난하는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였어요. 정보부에서 의총도 도청하고 JP전화도 도청하다가 호전이 돼버린 거죠.
JP가 정말 얼마나 시달린 줄 압니까. 정계 은퇴한다고 하니까· 하루아침에 청구동집 경비전화도 떼어버리고….그뿐인가요. 왜 그 집은 앞뒤 골목 네거리만 지키면 꼼짝 할 수 없잖아요. 낮이나 밤이나 6∼7명이 지키고있는데 드나들 때마다 어찌나 기분 나쁘던지…』
예씨는 증언을 계속했다.
『그렇게 그물을 쳐놓으니 JP인들 버딜 수 있나요. 67년7대 선거를 앞두고는 의원들 발길도 뜸해졌어요.
공천탈락 될까봐 겁나는데 누가 올 수 있나요. 6공 눈치보느라 연도동에 가지않는거 하고 똑 같지요. 의원들 뿐 만이 아니에요. JP가 군에도 친구가 많았는데 이들도 발길을 끊고….

<측근들에게 눈총>
이러니 JP인들 화가 안 나겠습니까. 7대 선거 앞두고도 당의장 그만두겠다고 한 적이 있지만 68년 5월엔 정말 당 의장직도 던지고 정치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그때 국민복지회 사건이 터져 JP계의 YT가 제명 당하기도 했지만 말이에요. 이 일은 도화선이었고 밑에는 다이너마이트처럼 불만이 뭉쳐있었죠 (국민복지회 사건은 다음 회에 등장한다)
박 대통령은 JP도 JP였지만 청구동 측근들을 매우 고깝게 여겼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YT·예춘호·이영량·양순직·이병희 의원 등 JP 그룹은『후계자는 JP』라는 속마음을 감추려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박 대통령과 친위세력의 눈에는『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물부터 마시는 모양새』쯤으로 비쳐졌을지 모를 일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심사를 JP측근에게 대놓고 내비친 적도 있었다. 예씨의 증언.
『64년 내가 사무총장을 하고 있을 때 청와대에 올라가면 박 대통령은 이런 이야기를 툭툭 던지곤 했어요.
「종필이 주변에 있는 친구들 말이야. 종필이가 권력을 잡으면 뭐 한자리씩 맡을 줄 알고 그러는 모양이지」라고요. 박대통령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색이 영 간단치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윤필용씨(전 수경사령관· 현 담배인삼공사이사장) 는『박 대통령은 JP를 철저히 미워했다』고 분명히 이야기하는 사람중의 하나다. 그는 이런 대목을 들려주었다.
『박대통령은 나를 허물없다고 여겼던지 웬만한 이야기는 다했어요. JP문제도 그랬지요. 술 한잔 들면 이러시는 거예요.「종필이는 너무 서둘러. 자기가 그렇게 안 해도 될텐데 말이야. 이봐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나. 잠자코 기다리면 될텐데 자기가 먼저 나서서 후계자가 되려고 하니….
그리고 그 주변친구들은 도대체 뭐야. 왜 그렇게 종필이를 부추겨 가지고 시끄럽게 하나. 종필이는 주변단속부터 잘 해야돼」라고요.』
윤씨 못지 않게 박대통령과 허물없었던 Z씨는『나는 철저한 제3자』라는 전제를 달며 청구동 그룹에 관해 이런 상황분석을 내놓았다.
『혹자들은 박대통령이 JP를 헐뜯는 정보보고에 귀가 얇았다고 말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권좌에 앉은 사람의 생리를 잘 읽어야 합니다.
보세요. 박대통령으로서는 보고 받는 채널이 여러 갈래입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비슷한 내용이 자꾸 반복되면 믿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물론 여기에도 음모가 있을 수 있지요. 부하들이「이런 보고는 각하구미에 맞겠구나」라고 머리를 굴려 자꾸 일을 부풀리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당의장에만 몰려>
어쨌거나 권부의 생리가 그러면 JP주변사람들이 조심해야지요. 꾜투리 잡힐 일을 해서는 안되는 거 아닙니까. 그쪽 그룹 대부분이 30대에 혁명한 사람들이라 조금 세상물정을 몰랐던 구석도 있었다고 봐요. 순수하게 JP를 위한다는 게 결국은 일을 그르치게 하는 거였죠.』
Z씨는『박대통령이 그 문제에는 신경이 무척 날카로웠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박대통령이 하루는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내가 듣기로는 의원들이 너무 김 의장에게만 달라붙는 다는 거야. 국회에서도 이효상 국회의장과 김 의장(당의장)이 나란히 앉아있으면 의원들이 이씨에게는 꾸벅 머리인사 만하고 김 의장한테 다가가 유별나게 귓속말로 속닥속닥하고…. 그러니 기강이 제대로 잡히겠어」라고요.
그러면 내가「아,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김 의장으로서는 어떻게 합니까. 일일이 불러서 그러지 말라고 코치할 수도 없고…」라고 두둔하기도 했지요. 박대통령은 듣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한 표정이였죠.』<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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