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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 소행 추정/택시 폭탄테러 수사방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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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개인­불특정인 겨냥 두갈래로/강경노조원 불만·주주­이사알력에 초점
서울 마포구 성산동 콜택시 시한폭탄 폭파사건은 당사자가 현직 노조위원장이라는 신분인데다 택시 폭탄테러라는 흔치않은 수법까지 겹쳐 노동계·일반인의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일단 내부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으나 범행동기·목적 등에 뚜렷한 단서를 찾지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따르면 이 폭발물은 다이너마이트 폭약과 뇌관에 1.5V 건전지를 부착하고 태엽식 타이머로 시간을 조절,작동시킨 시한폭탄으로 조작이나 작동방법이 간단해 전문적인 지식없이도 폭약에 대한 기초상식만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을 정도 수준이었다.
경찰수사결과 이 타이머는 부천 T금속에서 독점생산한 길이 68㎝·폭 3.75㎜의 특수강 태엽을 인근 D실업이 15분에서 최고 3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선풍기용으로 고안,가전업체에 납품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폭발물 장치시간은 폭파시간인 6월24일 오후 9시40분에서 3시간전쯤인 오후 6시30분 이후였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 시간중 택시가 정차해있던 곳은 서울 명일동 회사주차장과 피해자인 노조위원장 엄재훈씨(35)의 집앞 단 두곳 뿐이므로 범인은 두곳중 한곳에서 폭발물을 장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엄씨에 따르면 사고당일 오후 5시쯤 배차주임 안모씨(35)에게 『용돈이나 벌게 쉬는 차를 몰고싶다』는 말을 전하고 오후 8시쯤 주차장에 있던 차를 몰고 나왔다는 것이다.
엄씨는 이어 10분거리에 있는 자신의 암사동 아파트에 들러 길가에 차를 주차시킨채 저녁식사를 했고 오후 9시 넘어 아파트 입구에서 첫 승객인 조경숙씨(30·여) 가족 3명을 태우고 가던길에 폭발했다는 것이다.
엄씨는 당시 집앞주차때 문이 모두 잠긴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도 주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의 아파트단지라는 점등의 정황으로 미루어 이곳에서의 폭발물 설치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내 주차장에서의 폭발물 설치라는쪽으로 수사범위가 좁혀지고 있다. 노조전임자로 평소에는 택시운전을 않던 엄씨가 쉬는 차 3대중 한대를 불과 몇시간전에 회사측에 알린뒤 운행하다 폭파된 점에 비추어 치밀하게 계획된 테러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경찰은 테러가 엄씨 개인을 겨냥한 것인지 혹은 회사내부의 불만세력에 의한 것으로 엄씨가 우연한 희생자인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엄씨가 개인적으로 특별한 원한을 산일은 없으나 노조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일부 노조원의 반발을 산일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달 11일부터 시작된 서울시지부의 파업에 조합원(79명) 90% 이상의 찬성으로 참여했었다. 그러나 일주일만에 회사측의 「선정상화 후협상」안을 받아들여 파업을 푸는등 상당히 부드러운 노선을 취해 강경파 노조원들의 불만이 컸다는 것이다.
한편 차량 45대를 갖고있는 이 회사는 경영난가중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주주들에게 이익배당금을 지급하지 못해 운영을 둘러싼 마찰이나 경영권 다툼에 의한 테러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또 폭탄설치 장소가 운전석이 아닌 옆좌석이었다는 사실도 엄씨를 겨냥했다기 보다는 시위성 불만 표출일 수 있다는 추정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결국 이번 폭파사건은 내부소행일 가능성이 높아 쉽게 풀릴 수도 있으나 ▲목격자가 없는데다 지문등 범행흔적이 전혀없고 ▲범인의 자백없이는 범행을 사실상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여지도 없지않다.<고대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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