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명당'이 바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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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로 등 서울시내 주요 도로가 중앙버스차로로 바뀌면서 노점상들이 버스 승객의 동선을 따라 횡단보도 주변에 몰려 있다. [강남대로 교보타워 사거리=변선구 기자]

27일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마포역에 위치한 버스정거장 인근 횡단보도 앞. 노점상 다섯 곳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도로 한가운데의 정거장으로 가려는 손님을 붙잡기 위해서다. 마포로에는 지난달 2일부터 버스중앙차로제가 시행되면서 노점상의 '명당'으로 꼽혀 온 버스정거장이 도로 한복판으로 옮겨졌다. 이 때문에 노점상들도 정거장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 쪽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곳에서 김밥과 토스트를 파는 남명우(54.여)씨는 "4년째 장사하던 정거장이 도로 중앙으로 간 뒤 횡단보도 쪽으로 옮겼지만 하루 10만원 벌이가 5만원, 딱 절반으로 줄었다"며 쌓여 있는 김밥을 가리켰다.

버스중앙차로제 확산으로 합법적인 가로판매점(가판점)과 불법 노점상 사이에 희비가 엇갈리며 도로의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정거장 주변에 몰려 있던 노점상들은 정거장과 이어지는 횡단보도나 전철역 쪽으로 좌판을 옮기고 있다. 서울시의 허가를 받고 영업 중인 가판점은 규정상 자리를 뜰 수도 없어 울상이다.

용산구 갈월 지하차도에서 호떡을 파는 강모(52)씨도 지난달 한강로에 버스중앙차로가 도입된 뒤 100m나 장소를 옮겼다. 강씨는 "2년간 장사하던 버스정거장이 옮겨 가니 사람들이 호떡은 거들떠도 안 보고 바삐 지나가기만 하더라"며 "아예 다른 지역으로 떠난 이도 많다"고 전했다. 도로변 상가도 마찬가지다. 마포역 버스정거장 앞 상가에서 김밥집을 하는 김연화(45.여)씨는 "예전엔 버스를 기다리면서 서둘러 먹고 가거나 한 줄씩이라도 포장해 갔었는데 요즘은 그런 손님이 없으니 매상이 20%는 줄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반면 횡단보도 앞 김밥집은 손님이 늘어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직격탄 맞은 가로판매점=그나마 노점상은 장소나 옮길 수 있어 다행이다. 예전의 버스정거장 부근에 위치한 서울시 허가 가로판매점은 마음대로 옮길 수도 없는 처지다. 마포경찰서 앞 버스정거장 자리의 교통카드 충전소 주인 홍송자(67.여)씨는 "하루 100개씩 카드를 충전하던 것이 지금은 버스 기다리는 사람이 없으니 10개밖에 안 된다. 1만원 충전해 봐야 70원 남는 장사인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보도상영업시설물(가판점) 연합회장 심천택(60)씨는 "최근 두 달 사이 폐업한 곳만 10곳 이상"이라며 "중앙차로가 생긴 곳은 장사가 거의 안 되고 있지만 주변 건물 상인들의 반대로 자리를 옮기기도 어려워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전체 노점을 1만5000여 곳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이 중 가로판매점은 3600여 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거장은 가급적 크게 움직이지 않는 게 버스정책의 기본이지만 중앙차로제는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권근영 기자, 구민정.이에스더 인턴기자<young@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가로판매점=서울시 허가로 운영되는 노점으로 버스카드충전소.신문가판대.구두수선대 등이다. 1977년 버스운송사업조합이 시와 협의해 만든 토큰박스가 시초다. 시는 서울 올림픽 때 노점상을 대대적으로 철거하면서 89년 생계 대책으로 가판점을 허가해 준 것을 끝으로 신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남에게 양도할 수도, 폐업한 곳에 대해 새로 허가를 받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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