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소탕 룸살롱 '위장 취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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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나 사실은 형사야. 얌전히 따라와."

"아니, 金전무님 이게 웬 일…. "

지난 19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의 한 사무실. 경찰관 5명이 들이닥쳐 수갑을 채우려는 순간 4명의 폭력배들은 어리둥절했다. 단골로 드나들던 술집의 '영업전무'가 갑자기 형사가 돼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경찰청 폭력계 K경사다. 이날은 그가 한달간의 위장취업 근무를 끝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K경사가 구리시의 E룸살롱에 전무로 취업한 건 지난달 중순. "업주 Q씨가 '구리식구파'로 불리는 조폭들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수천만원을 뜯기는 등 5년 동안 끊임없이 시달려왔다"는 제보를 받고 Q씨의 양해를 받아 '전무'행세를 시작했다.

건장한 체구의 K경사는 밤마다 검정색 양복을 입고 손님들을 안내하고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머리를 더 짧게 깎아 완전히 '깍두기'로 만들고 사투리 억양도 더 강하게 했다"는 게 K경사의 말이다.

그는 종종 공짜술을 마시러 온 구리식구파들과 인사를 나눠 얼굴을 익히고 계보를 파악했다. 밖에는 따로 후배경찰관을 잠복시켜 이들을 미행해 은거지를 파악하게 했다.

한달간 수사로 피해자 진술 등을 확보한 뒤 K경사팀은 이날 이들의 소탕에 나섰다. 10명이 붙잡혔고, 그 중 행동대장 金모(31)씨 등 5명은 21일 폭행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조사 결과 이들은 왼쪽 새끼손가락을 절단하는 입단 의식을 치렀으며, 최근 수년 동안 자신들에게 '보호비'를 내지 않는 술집의 영업을 방해하는 수법으로 업주들로부터 2억원이 넘는 돈을 뜯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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