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죽음을 느끼며 삶을 기록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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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쉰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강태(사진) 시인의 유고시집 '빈 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출간됐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발표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김씨는 병세가 악화되던 4월 서둘러 원고뭉치를 출판사에 넘겼지만 책으로 받아보지는 못했다. 1978년 등단해 스무해를 넘긴 시작(詩作) 인생이 채 70편이 못 되는 유고시로 남은 셈이다.

여러 시편들이 '유고 코드'로 읽혀진다. 투병의 흔적, 죽음을 눈앞에 둔 심경, 절망 가운데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았던 모습 등이 짐작된다. 노골적인 '귀지를 흘리며-병상일지'에서는 병원 침상에 눕는 순간 자신의 귀에서 떨어지는 허연 귀지를 목격하고는 "그동안 정체된 것들의/여린 호흡/귀지란/내 몸의 새살이다"라고 노래한다. 이어 시인은 "엄청난 밀어내기로/윤기 나는 귀지"를 귀 밖으로 내보낸 싱그러운 생명의 힘에 주목한다. '코피란 무엇인가'에서는 "코피란 몸이 애써 짜낸 진액이다/누런 색깔이 몹시 하얘질 때까지/심혈을 다해 끝까지 짜낼 일이다"라며 코피를 통해 몸의 고해성사를 알아들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어떻게 냄새를 닦을까'는 불길하다. 후각이 예민해진 탓일까. 볼일 보러 화장실에 간 시인은 화장실에 놓인 컵 언저리에 살짝 진쿠렁 내음이 묻을까봐 신경 쓰인다.

'불안'에서는 "불안쑤시개로 콕콕,/불안찌꺼기를 쪼아내어도" 부메랑의 예리한 날 끝처럼 여전히 파고든다고 털어놓았다.

유고를 정리한 동국대 장영우 교수는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대체의학에 상당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 때문인지 많은 시편들이 어둡지 않다. '은방울나무'에서는 "맑은 겨울비 가늘게 그친 아침" 신(神)이 밤사이 다녀간 듯 순은(純銀)같은 물방울을 가지에 인 은방울나무를 아름답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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