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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특파원 이라크 리포트 1信] 美의 '쇠망치 작전'에 "저항" 목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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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중동문제 전문기자인 서정민 특파원이 올 들어 네번째로 바그다드를 찾았다. 徐특파원은 지난 9월 말~10월 초의 현지취재 이후 한달반 만에 현지사정이 놀랄 만큼 달라졌다고 전해왔다. 이슬람 명절인 라마단(금식월)을 맞은 이라크인들은 아랍어를 말하는 이 이방인에게 "이제 본격적인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불안과 기대가 동시에 실린 뉘앙스였다고 한다.

◇반미전쟁과 '쇠망치 작전'=17일 새벽 4시 요르단-이라크 국경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장사꾼과, 외국에 살다 귀국하는 이라크인들이 차 위에 짐을 가득 싣고 입국 수속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전에 그렇게 많았던 국제기구나 구호단체 직원, 기자 등 외국인은 찾기 어려웠다.

국경택시 기사 무하마드 샤가티(29)는 "이라크를 빠져나오는 외국인은 많아도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종전 직후 금광이나 발견한 듯 바그다드로 마구 몰려가더니 불과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썰물처럼 철수했다"고 말했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요르단 사무소에서 일하다 라마단 휴가를 얻어 1년 만에 바그다드 알만수르의 집으로 돌아가는 림 압달리(29)라는 이라크 여성을 만났다. 그는 "갈수록 위험해져 가족 모두를 요르단으로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미군을 쫓아내기 전에는 절대 이라크를 떠날 수 없다는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알만수르는 부유층 거주지다. 외국에 안전한 삶의 기반이 있는 부유층도 저항에 동참한다는 인상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서쪽으로 1백여km 떨어진 팔루자와 라마디를 지나는데 지축을 흔드는 소음이 들렸다. 헬기 두대가 선회하는 가운데 험비지프와 장갑차, 그리고 탱크가 한 마을로 몰려갔다. 저항세력을 대상으로 하는 미군의 '쇠망치 작전'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택시기사는 "전쟁 때 요금을 다시 받아야겠다"고 말했다.

바그다드의 중심가인 사둔 거리. 카페에서 만난 한 이라크 남자가 "바보라도 이제는 저항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변에 있던 남자 몇명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지금 '하르반 딧다 아무리칸(반미 전쟁)' 중이다."

◇라마단의 분노=바그다드는 16일 밤부터 전기공급이 끊겨 암흑세계로 변했다.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고 한다. 17일 낮12시쯤 특급 호텔인 팔레스타인 호텔 등 일부에 불이 다시 들어왔으나 오후 1시부터 다시 나갔다. 이 정전은 밤새도록 계속됐다.

문제는 지금이 라마단 기간이라는 점이다. 해가 떠있는 동안 단식을 한 이슬람교도들은 해가 진 직후인 저녁시간에 '이프타르'라고 해서 온 가족(또는 친척까지)이 모여 저녁을 아주 성대하게 차려 먹는다. 새벽녘에는 간단한 수흐르라는 식사를 하고 간식을 시작한다. 밤에 두끼를 먹는 셈이다.

저녁에 화려한 쇼윈도가 즐비한 상가나 백화점에서 가족끼리 쇼핑을 하고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그래서 라마단은 단식을 통해 가난한 이의 고통을 새기는 종교적 행사인 동시에 가족과 즐거움을 나누는 이슬람의 축제다. 이런 시기에 정전이 됐으니 이라크인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불도 없는 방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냉동식품이 모두 녹거나 상해 못 쓰게 되는 것도 큰 문제다.

팔레스타인 호텔의 직원인 자으파르 하심(27)은 "우리 이슬람교도의 가장 큰 종교적 의무이자 축제인 라마단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너도 나도 화가 났다"며 "이 같은 상황이 과격 종교세력의 저항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령은 싫다"=바그다드의 한 카페에서 이곳 사람들의 본심을 들어볼 기회를 얻었다. 한 중년남자가 나서 열변을 토했다. "이라크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전쟁을 겪었기에 폭력을 아주 싫어한다. 그래서 미군이 점령해도 조용히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불안하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바그다드 남서부 아들 지역에서 만난 탈랄 하카크(28)라는 운송회사 직원은 시아파로 지난번 미군 입성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도 지금은 "점령이 장기화하면서 미군을 좋아하는 이라크인은 나를 포함해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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