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발전 서서히 진행 중"|전 서울대 총장 윤천주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올해로 고희를 맞이한 인재 윤천주 전 서울대총장은 요즘도 선거 행태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선거 때마다 서울일대는 물론 부산이나 목포 등 전국을 다니며 현지주민의 의견을 듣고 유세장을 순회관찰하며 투표결과를 조사·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온 그는 58년4대 민의원 선거에서부터 88년 13대 4·26총선에 이르기까지 여론조사와 선거결과를 연계시켜 국민의식에 따른 정치행태 연구를 해왔다.
그는 그가 펴낸『우리나라의 선거실태』와 이의 속편격인『정치참여와 정치발전』을 선거 때마다 보완해 89년까지 3판을 냈다.
그는 벌써 이번 지방자치선거결과에 대한 자료를 확보해 놓고 있고 내년 초에 있을 14대 총선에 대한 연구도 단단히 벼르고 있다.
『한국정치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얼마나 향상되고 있는지 국회의원선거를 통해 시대적으로 고찰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고대교수로 정경대학장까지 지내다 5·16후 공화당창당 때 정계에 뛰어들어 공화당사무 총장을 지냈던 그는 문교부 장관을 거쳐 7대 때 공화당 전국구의원이 된다.
그는 73년 부산대총장으로 하향기용(?) 됐는데 데모가 한창이던 당시 부산대를 데모 없는 학교로 만든 실적이 평가돼 서울대총장으로 발탁됐었다.
관악캠퍼스로 막 옮긴 서울대를 샅샅이 돌며 학생들을 단속하던 그는 마침내 장발학생의 멱살을 잡고 승강이를 벌이는 소동도 빚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서울대총장을 역임한 후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 지내다시피 했다.
그는 요즘은 요란했던 지난 시절과는 달리 인천대·단국대행정대학원 객원교수와 학술원회원으로 연구생활만 하고있다.
윤전총장은 지난 1학기에 이들 대학에서「선거 및 투표형태론」「한국정치론」을 강의했고 지금은 방학중이라 삼선동 자택에서 2학기 강의준비를 하고있다.
봄에는 서울대·부산대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등에서 특강하기도 했다.
그는 투표참여 율을 통해 본 우리정치는 일단 발전했다고 보고있다.
『58년, 60년에 실시된 4, 5대 선거 투표율이 무려 90·6%, 84·3%나 되던 것이 그 이후엔 70%대로 떨어지면서 평준화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선진국형이지요. 과거투표율이 지나치게 높았던 것은 대리·부정투표 등 불법선거·관권선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윤전총장은 이번 선거 투표율을 지적하면서『도시와 읍·면 농촌간의 투표율이 과거에는 격차가 심한「상승형」이던 것이 선거를 거듭할수록 격차가 줄어드는「횡행형」으로 변해가고 있다』면서『이점도 정치수준 향상의 한 척도가 된다』고 밝혔다.
그가 한국의 정치가 발전되고 있다고 본 요소는 또 있다.
즉 선거결과를 분석한 결과매년 평균 2·3%의 비율로 여당을 지지했던 표가 야당으로 옮겨간다는 것.
『매년 야당지지율이 높아지면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집니다. 집권자를 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실현 아니겠습니까. 2·3%는 곧 정치의 성장률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는 지난해 초 3당 합당으로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배반했다고 괘씸해하고 있다. 『정치참여에 있어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정·민주·공화 3당총재들은 백성이나 당원들과 협의 없이 국민이 만든 소여를 거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골입니다.
권위주의를 탈피해 보자는 유권자의 정치참여와 의도, 투표행태에 반하는 행동이지요.』
공화당에 참여했고 유신시절면학풍토를 잡는데 정력적이었던 지난날의 그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는 14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선거법을 고치려드는 것도 못 마땅해 했다.
『축구를 봅시다. 축구에는 오프사이드. 페널티킥·프리킥 등 많은 규칙이 있습니다.
만일 이 규칙을 제멋대로 바꿨다고 가정해 봅시다. 축구가 제대로 이뤄지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선거에서도 볼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됩니다.』
그는『미국이나 영국에서는 2백∼3백여년 동안『선거법이 변하지 않았다』며『자기한테 편리하도록 고친다고 우왕좌왕하면 정치안정은 바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윤전총장의 열변은 끝이 없다.
그는 요즘 매일 새벽 부인 이정희여사(66)와 함께 정릉일대를 1시간여 동안 산책하고 하루 30분씩 운현궁 중앙문화센터에서 수영을 한다.
『원래부터 운동을 좋아했지요.』부산동래 고보시절엔 야구선수로 활동했고 고대교수로 있을 때도 야구부 창설에 힘쓸 만큼 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있다.
2남중 큰아들 대근씨(45)는 동부제강부사장이고 작은아들 태근씨(43)는 미국뉴욕에서 사업을 하고있다.
큰딸 성애씨(39)·작은딸 미애씨(36)는 각각 주진우 사조산업사장·이서항 외교안보연구원교수의 부인이다.
두 아들과 두 사위가 모두 서울대를 졸업, 그의 집안 남자식구들은 모두 서울대 동문이다.
글 정선구 기자
사진 주기중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