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치솟는 유가에 허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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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유가가 지속되자 '자동차 왕국' 미국에서도 차를 덜 타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5일 지난해 미국 운전자들의 연간 주행거리가 25년 만에 제자리걸음이었다고 보도했다. 한국 휘발유값의 3분의 1수준인 미국에서도 기름값에 영향받아 차량 운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미국 교통안전국 자료에 따르면 운전자들의 연간 주행거리는 1981년부터 연평균 2% 이상씩 꾸준히 늘어왔다. 그러나 휘발유 가격 오름세가 이어진 지난해는 증가율이 0.1%에 그쳤다. 전년(1만3700마일, 2만2048㎞)과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2005년도 운전자 1인당 주행 거리는 전년에 비해 0.4% 증가했다.

지난해 1~9월 미국의 휘발유 판매량은 전년에 비해 0.6% 줄었다.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같은 기간 버스와 철도 등 대중교통 이용자가 전년 동기보다 5.7~6% 늘었다. 로스앤젤레스 교통당국은 "일반적으로 버스와 철도 이용률은 휘발유값이 오르면 높아지고, 하락하면 감소하지만 지난해에는 꾸준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 밖에도 대중교통 이용률이나 휘발유 소비량, 자동차 판매, 음식점 및 소매점 이용률 등을 종합해 보면 소비자들이 오른 기름값 때문에 생활 패턴을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연구소 NPD그룹의 데이베드 포탤러틴 소장은 "소비자들의 지출 행태를 분석해 본 결과 운전자들이 차를 덜 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름을 덜 쓰는 일은 어디에서 살고, 직장이 어디고, 그리고 어떤 차를 몰아야 하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일어나기 힘든 변화 중 하나"라며 "그러나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 같은 현상을 "작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기름값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실생활에서 휘발유 소비를 줄이는 것이 워낙 어렵다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기름값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연두 교서에서 '미국의 휘발유 중독' 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 '휘발유와 미국인'이라는 보고서를 낸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소 대니얼 예긴 소장도 "최근 미국인들은 주행 거리를 줄이고, 기름을 많이 먹는 SUV차량에 대한 선호 경향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문은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 수십 년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름값이 올라 소비자들이 휘발유 소비를 줄이는 것은 일시적 현상에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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