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너희 덕에 나를 발견 … 고맙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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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내 안의 열일곱
김종휘 지음, 한송이 그림
샨티, 320쪽, 1만1000원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운다. 그러니 선생은 주고 학생은 받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 역(逆)이 성립함을, 서로 발견하고 돌봐주는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선생 스스로가 성장함을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발견하는 것, 선생(先生)과 후생(後生)이 서로를 돌봐주는 것, 이 도리를 알려준 너희에게 다시 그 도리를 선물로 보낸다. 나의 별이었던 너희 때문에 나는 내 안의 무수한 열일곱을 만났다. 덕분에 행복했다."

이 책은 한 행복한 교사의 기록이다. 여기서 교사는 글발과 실력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문화평론가 김종휘(사진)씨다. 1999년 개관한 서울 영등포에 있는 청소년대안학교 '하자센터'의 기획부장으로 일했던 그는 센터 내 하자작업장학교를 찾은 10대 청소년들을 2년 간 가르쳤다. 여러 아이들이 그를 거쳐갔다. 학교에 와서 노상 잠만 자는 아이가 있었는가 하면 군인 아버지에 반발해 가출한 아이도 있었다. 스스로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에 부모의 배려마저 귀찮게 여기는 아이도 있었고 부모의 이혼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치이던 아이도 있었다.

책은 아이들의 성장통에 대한 처방을 어떻게 내렸는가, 그래서 어떻게 치유됐는가를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방황과 상처를 접했던 당시의 자신에게 청진기를 들이댄다. 더불어 '나의 열일곱은 어땠는가'를 역추적한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과 고백이 있기에 책은 여느 교육에세이보다 더 농밀하고 더 맛깔나다.

매사에 "이상한 걸요"라고 대꾸하던 아이가 있었다. 선생은 그런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시일이 흘러 아이의 속내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들었을 때 선생은 가슴을 쳤다.

"교사가 동료로서 다가오길 바라는 아이에게 교사 자신의 판단과 권능을 앞세우며 지배하려 할 때 아이가 내지르는 비명, 그것이 아이의 딴죽이고 딴짓이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반신불수 아버지를 떠올린다. 아버지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반나절씩 걸려 산책을 했으며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오랜 시간을 들여 방바닥을 훔쳤다. "이럴 땐 이걸 열심히 하고 저럴 땐 저걸 열심히 하면 돼."

농부가 되겠다고 관련 학과로 진학했지만 곧 공장에 위장취업을 하는 등 사회운동에 열을 올리던, 그러면서도 밤에는 야한 연애소설 습작을 하고 팝송을 흥얼거리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네가 뭘 하는 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모는 그냥 아들을 믿고 지켜보기만 했다. 아들은 헤매기는 했지만 매순간 몰입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갔다. "이상한 걸요"라는 말을 하던 아이에게도 그런 지켜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고 지은이는 후회한다.

지은이는 "지금도 여전히 그 시절 그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가르침으로 해서 오히려 배웠던 경험이 워낙 웅숭깊었던 때문이다. 2년 간의 짧은 경험, 대안학교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사제관계가 점점 기능적으로만 변해가는 우리 현실에서 이 책은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의 참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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