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보고서에 나타난 보험 사기 수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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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보험금을 타면 절반씩 나누자…."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이모(43)씨는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건강보험 등에 들도록 꼬드겼다. 이씨는 이들에게 설탕물과 초콜릿을 먹인 뒤 당뇨수치를 측정해 당뇨병 환자로 만들거나 운동 직후 혈압을 재는 방법으로 고혈압 환자로 둔갑시켰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2001년부터 164차례에 걸쳐 타낸 보험금은 8억5000만원. 이씨의 사기행각을 알면서도 허위진단서를 끊어준 의사는 4100만원의 건강보험 급여금을 챙겼다.

수도권 모 의원의 의사 최모(41)씨는 요실금 수술을 받은 환자가 곧바로 퇴원했는데도 마치 입원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최씨가 요실금 환자 280명에게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 보험사로부터 타낸 수술 보험금은 14억원에 달했다. 보험약관에 따르면 반드시 입원을 한 뒤 요실금 수술을 해야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돼 있다.

25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금융감독원의 '병.의원 보험사기 수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4년 동안 314개 병.의원이 보험사기에 연루됐고, 적발 금액만 159억원이 넘었다. 단속된 병.의원은 대부분 보험사기범과 공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보험 사기로 적발된 병.의원이 2003년 15개에서 2004년 99개, 2005년 117개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적발금액도 2003년 5억6000만원에서 2005년 60억6900만원으로 급증했다. 적발된 병원들은 주로 ▶허위 진단서 발급▶과잉 진료▶환자와 짜고 서류상 장기입원치료(소위 '나이롱 환자')하는 방법을 통해 보험금을 타냈다. 금감원이 지난해 보험사기 혐의가 짙은 전국 700여 병.의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고 기록된 환자 가운데 16.8%가 사실상 병원에 없는 '나이롱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환자용 병상이 100개에 불과한 병원이 하루 200명의 환자를 수용하고 있다고 기록된 곳도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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