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마음을 비운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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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 . 창하오 9단  ● . 서봉수 9단

1국이 끝난 뒤 하루의 휴식이 있었다. 12월의 날씨가 가을처럼 온기를 품고 있었고 하늘엔 별이 반짝였다. 외떨어진 삼성화재 유성 연수원 주변은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고적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서봉수 9단과 나,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또 한 명은 밤의 오솔길을 걸어 대학교 앞의 포장마차로 갔다. 한잔에 200원 하는 커피와 300원 하는 오뎅을 먹으며 '승부'에 대해 끝없이 얘기했다. 서 9단은 실력이 최강은 아니었기에 파죽지세로 상대를 밀어붙인 적은 없었다. 중요한 결승전마다 고전이었다. 승리를 간절히 원하면 이기지 못했고 오히려 포기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비우면 승리가 찾아오곤 했다. 그래서인지 1국을 진 서 9단은 "마음을 비웠습니다"고 웃으며 말했다. 얼굴을 알아본 학생들이 저쪽에서 서 9단을 향해 귓속말을 했다. 서 9단은 문득 말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운다는 게 도대체 뭘까."

장면도(1~20)=2006년 12월 7일 오전 10시에 2국이 시작됐다. 흑을 쥔 서 9단은 세 개의 소목을 앞세워 실리 전법으로 나갔다. 1국에서 세력을 펴다가 깊숙이 쳐들어온 특공대를 막지 못해 진 것이 마음에 걸렸을까.

백4는 '참고도'와 같은 미니 중국식 포석을 피한 수. 빈 귀를 놔둔 채 즉각 둔 백 6도 일종의 '비튼 수'. 이 같은 수법은 이창호 9단도 애호하고 있어 당분간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 20까지 처음 보는 포진이 펼쳐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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