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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파병 '큰 그림' 놓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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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과 조영길(曺永吉) 국방부 장관이 참가하는 가운데 17일 서울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의 핵심 이슈는 이라크 파병 문제가 될 것이다. 특히 노무현(盧武鉉)정부가 이라크 파병 문제를 놓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은 향후 5~10년간 상당히 다른 국제 정치.안보 환경에 처할 것이다. 내 충고의 핵심은 한국이 단편적 이익 대신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국익을 취하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2천~3천명 규모의 소규모 병력을 파병하려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라크전 자체가 별반 인기가 없는 전쟁인 데다 자칫 이라크에서 한국군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또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파병을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 내 일부 정책 입안자들이 적은 병력을 보내 워싱턴에 적당히 '성의표시'를 하는 한편 국내 파병 반대론자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계산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끝내 소규모 파병을 결정할 경우 이는 1차적으로 미국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것이다. 짐작컨대 미국인들은 '한국이 너무 야박하게 군다'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우방의 도움이 절실하다. 미군 병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미국은 한국에 주둔 중인 3만7천명의 주한미군 중 일부를 빼서 이라크에 배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하는 것은 '상징성' 측면을 크게 고려한 것이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전쟁으로 황폐화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이라크를 미국과 국제사회가 힘을 합해 새롭게 건설한다는 그림이다. 미국의 믿음직한 동맹국인 한국이 바로 그와 같은 역할을 맡아 달라는 것이다.

한국이 1만명 이상 사단 병력을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2천~3천명 규모의 병력을 보낼 때와의 차이는 수천명이지만 향후 한국 정부는 안보.대미.대북.국제관계에서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펜타곤과 미 의회로부터 상당한 감사와 호의를 이끌어 내는 것은 물론 곧 진행될 주한미군 재배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북한 문제를 둘러싼 서울과 워싱턴 간의 정책 조정 작업에서 한국의 입지를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사단병력 규모의 파병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여줄 것이다. 한국은 파병을 통해 한반도 차원에서 머물던 국가에서 벗어나 글로벌 플레이어(Global Player)로 부상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성취한 몇 안 되는 국가다. 한국의 이런 소중한 경험을 중동국가에 전수하는 것은 한국민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석유를 비롯한 경제적 실익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은 90% 이상의 석유를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한국이 대규모 병력을 파병할 경우 이는 한국이 추구해온 안정적 에너지 안보 정책에도 부합하는 것은 물론 이라크 재건사업에도 유리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다. 盧대통령은 한국 헌법에 따라 취임한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이다. 싫건 좋건 간에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향후 4~5년간 진행될 이라크 사태 추이에 장기적으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라크에 배치된 한국군 가운데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한 관점에서 볼 때 사상자는 병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발생할 수 있다. 이라크 파병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단기적 이익과 중장기적인 이익이 서로 엇갈릴 수 있는 현안이다. 그만큼 어려운 결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이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큰 그림'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티븐 코스텔로 프로 글로벌 대표.한국문제 전문가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