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 24시] 기업문화 바꾼 '새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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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새한은 최근 사무실 임대 계약을 다시 했다. 이 회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빌딩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까지 ㈜새한은 이 빌딩의 주인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빌딩을 팔고 7개 층을 빌려 쓰는 세입자가 됐다. 새한은 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이다. 산업은행.우리은행 등 채권단이 지분의 69.45%를 가지고 있다. 공덕동 빌딩 매각도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새한은 조용히 변신하고 있다. 최근까지 3천4백여억원의 자산을 팔아 부채를 절반 이상 줄였다. 전체 직원의 43%인 8백50여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강도높은 구조조정도 했다. 구조조정과 함께 형식주의에 얽매였던 과거의 기업 문화도 바꾸고 있다. 지난 1월 취임한 박광업(52)사장이 그 선봉장이다.

◇개혁의 코드는 탈권위와 실용= ㈜새한에는 결재 서류나 업무 보고서를 들고 다니는 일이 없다. 모든 결재와 보고는 인트라넷이나 e-메일로 이뤄진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하루 이상 걸려 보고서를 만드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것이다.

보고는 현장에서 e-메일로 이뤄진다. 사장이나 임원들의 출장길에 부하직원이 배웅하거나 하는 의전도 일절 없다. 형식에 얽매인 행동은 금지다.

사장실이나 사장접견실도 직원들의 회의 또는 바이어와의 상담 장소로 공개됐다. 朴사장은 "사소한 일을 고쳐나가는 것이 개혁에 접근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말했다.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를 없애자는 취지다. 朴사장은 경북 영덕의 산골마을 출신이다. "영덕 출신이면서도 영덕게를 몇년 전에 처음 먹었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신문 배달, 간장 장사 등 돈벌이라면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다. 어려웠던 과거가 그를 군더더기를 싫어하는 실용주의자로 만들었다. 지금의 새한에 더없이 적합한 CEO인 셈이다. 소탈한 스타일이어서 직원들과의 술자리도 잦다. 그는 "직원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다 보면 회사의 상황을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朴사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이다. 새한의 전신인 제일합섬 때부터 27년째 일하고 있다. 지난해 사장 공모에 참여해 CEO로 선임됐다.

◇사업 구조 고도화=새한은 회사의 미래가 비의류용 섬유와 환경 소재에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전체 매출의 20%선인 비의류용 섬유의 비중을 50%로 높일 계획이다. 의류용 섬유도 고부가가치의 기능성 제품 비중을 높이는 중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폴리레이온 신축성 직물인 베스모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23%)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산업용 필터 사업을 늘려 종합 수(水)처리 회사로의 변신도 꿈꾸고 있다.

하지만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화섬업계가 전반적인 불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으로 세계시장에 침투하는 중국의 성장세는 위협적이다. 올해 당기순이익에서 흑자 전환을 이루기는 했지만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훨씬 줄었다. 1천원대를 오르락 내리락 할 정도로 떨어진 주가(액면가 5천원)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朴사장은 "회사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워크아웃 졸업 등 밝은 소식이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장담했다.

김승현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연혁

1972년 제일합섬㈜ 설립

1995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1997년 ㈜새한으로 상호 변경

2000년 워크아웃 신청 이후 경영진 교체

2002년 대표이사 회장제 폐지

2003년 박광업 사장 취임

◆주요 사업

원면.원사.폴리에스테르칩.직물.필터

◆종업원

1천1백86명

◆매출

2002년 매출 7천7백32억원, 올 상반기 매출 3천7백20억원

◆관계사

새한마텍.새한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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