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게 팔지만 값진 보람 남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15일 오후 3시 서울 양천구 목1동의 한 가게.

녹색으로 곱게 물들인 자원봉사 유니폼을 맞춰 입은 10여명의 주부들이 매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손님이 진열대를 쳐다보는 눈길을 놓칠세라 자원봉사자들의 상품설명은 쉬지를 않는다. 멋쩍게 미소를 짓던 40대 남자손님은 진열된 점퍼를 만져보더니 "이거 얼마죠?"라고 물었다. 판매가는 5000원.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겨울점퍼인지라 손님이 다시 되묻는다. "뭐라고요? 아니 그렇게 싸요?" "새 것은 아니지만 흠잡을 데는 없습니다. 저희들이 모두 손을 봤거든요. 사시면 소외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셈입니다." 손님은 서둘러 지갑을 열더니 마음까지 흐뭇한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 밖을 나섰다.

8년간 양천구의 자랑거리였던 자원재활용 매장 '녹색가게'가 한달여의 내부수리를 끝내고 재탄생,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녹색가게는 1998년 양천구가 예산을 투자, 목동의 자원재활용센터 옆 공간에 15평의 매장을 마련한 게 출발이었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는 '아나바다' 운동의 전진기지를 선언해 만들어진 가게다.
목동1호점이 만들어지고, 다시 1년뒤 신정5동에 2호점이 들어서 양천구의 자원재생 운동을 상징하는, 양천만의 대표적인 가게로 이름을 알려왔다. 지금껏 2만8000여점의 옷과 신발.가방.스포츠용품.책을 모아 되팔았다. 이 가게에서 물건을 산 사람만도 1만2000여명에 이를 정도. 지난해 2월엔 교복교환장터를 열어 1100여벌의 학생복과 1200여권의 참고서를 팔아 300여만원의 수익금을 올렸다. 물론 수익금 전액은 학생 12명의 장학금으로 다시 전달돼 양천지역에선 자원재활용의 모범적 사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다 녹색가게 1호인 목동점은 지난해 말 변신에 들어갔다. 비좁은데다 시설도 낡아 '그렇고 그런' 허름한 가게로 전락돼 가고 있었던 것. 안승일 양천구청장 권한대행이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1000여만원을 들여 시설 개·보수 등 완벽한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한달여만인 지난 12일 새로 문을 열었다.

물론 가게 운영을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 양천의 3개 여성단체의 역할도 컸다. 양천구의 남서여성민우회와 주부환경연합회.목동아파트어머니회연합회가 녹색가게 운영의 삼총사 그룹. 단체마다 3~4명씩 10여명이 가게에 상주, 공동운영해 알뜰히 꾸려온 장부를 내보였다. 이들은 재개점에 맞춰 구색을 갖출 물건모으기에 또다시 열을 올렸다. 기증품 수선도 이들의 몫이다.

양천구의 공무원들도 가세했다. 권용달 양천구 주민생활지원국장이 러닝머신을 내놨고, 류택수 홍보담당관이 큰 맘 먹고 산 테니스 라켓을 기증하는 등 100여점을 내놓아 썰렁해보이던 가게를 다시 채웠다. 재개점 당일인 12일 이렇게 모은 기증품을 팔아 얻은 이익금은 89만8000원. 이 역시 결식학생을 돕는 돈으로 쓰기 위해 은행금고에 맡겼다.

하지만 가게의 더 큰 자랑거리는 운영에 참가한 3개 여성단체의 희생정신. "그래도 점심값은 드려야 하지 않느냐"며 구청이 지급한 하루 5000원의 식사비를 모아 지난해 말엔 거금 150만원을 만들어냈다. 이 돈은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됐다.

정영민(50)어머니회연합회장은 "나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기쁨이 있으면 행복이 오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이희숙(56)주부환경연합회장은 "아이들에게 환경사랑의 소중한 가치를 전달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 오히려 고마운 건 우리"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교복장터로 번 돈으로 손자가 장학금을 받았다는 한 할아버지는 직접 가게를 찾아 여벌의 옷을 다시 맡겨 나눔을 다시 나누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임행(50)남서여성민우회 실무는 "지난해 여름 주변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한 인부가 바지가 찢겨진 채로 가게에 들러 단돈 1000원으로 다른 작업용 바지로 바꿔 입고선 웃으면서 나갈 때 보람을 느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박춘은 양천구 재활용팀장은 "어머니들의 도움으로 가게가 나눔을 실천하는 명소가 돼 가고 있다"며 "서로 돕고 끌어주는 기부.기증문화를 확산시키는 공간으로 꾸며가겠다"고 말했다. 이용문의는 1호점(목동) 02-2647-6670, 2호점(신정동) 2695-6671

프리미엄 양성철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