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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어느 영국 가정에서 배를 빌려 1년간 항해를 떠났는데 아이들은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읽을 책 사오백권을 싣고서였다고 한다.
이것과는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얼마전 친구가 강의 원류를 따라 가보는 강 탐사를 떠났는데 사람들의 갈증에 대한 부분을 몸소 행동으로 옮긴다고 부러워했었다. 강 탐사라는 말에서 창공에 빛난 별이나 시원한 바람을 떠올렸던 것이다.
탐사에서 돌아온 친구의 얘기가 강물이 둔탁하다 못해 밭고랑 패듯 팼으며 어쩌다 보트 밑으로 다리라도 내려뜨리면 피부병이 생긴다고 야단했다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한 배를 타고 죽음의 골짜기에 서있는 것 같았으며 이 물을 마시며 사노라면 곧 뇌의 기능을 잃어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이상한 인간들이 되어 버릴거라고 했다.
그런데 책을 싣고 1년간 항해를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보다 생생하며 살아있는 시간, 인생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접근, 인간에 대한 신뢰가 그 속에 담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어린 시절 느끼던 생에 대한 희망, 평화로운 마음 같은 것을 솟구치게 만든다.
오늘 그런 것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아이들은 점점 태어난 본래의 자기를 잃고 기존 질서에 끊임없이 길들여져 간다. 청년 시절에는 모순 투성이인 사회에 대해 저항하고 변혁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면 드디어 무릎 꿇고 순응하고 만다. 그리하여 종래에는 대부분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 세상의 혼미 속에 섞이게 마련이다. 그런 어른인 우리를 그나마 지탱하게 하는 것은 유년에서 길어 올린 추억이 아닐까. 1년간 책을 싣고 항해를 한 아이와 그런 추억이 없는 사람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또한 그런 추억을 가진 사람이 일원이 되는 사회 역시 다를 것이다. 오직 어린이에게만이라도 온전한 유년을 안겨주었으면 싶다.
「지식의 어느 최대량을 성장해가고 있는 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로서 학교를 보는 것은 바르지 못합니다. 지식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학교는 살고 있은 것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복종하기 쉬운 성격의 사람입니다. 청년들이 학교를 떠날 때는 조화가 이루어진 인격의 소유자일 것을 학교는 언제나 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교육에 대한 생각은 그의 다른 많은 생각들과 함께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의 입시열은 우려보다 심하며 유교권 문화에서 입시 지옥은 제아무리 제갈공명 열 사람이라도 어떻게 하지 못하리라는 얘기이지만, 정말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죽음의 골짜기를 만들어놓은 기성세대가 자라나는 아이들 역시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있음을 오늘 우리의 필연적 현실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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