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마니·디오르 가죽 옷 염색 불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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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버버리 등 유명 브랜드의 일부 의류제품은 염색 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페인의 자라 브랜드 치마에서는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됐다."

중국이 갑자기 유럽산 명품의 품질 문제를 들고 나왔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인체에 유해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의 대응 방식에 따라서는 무역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계속되는 EU의 대(對)중국 무기수출 금지조치에 대한 중국 측의 보복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명품 브랜드 40% 이상이 문제"=상하이시 공상국은 중국에서 판매 중인 유럽산 40개 유명 상표의 의류 제품 중 59개 샘플을 뽑아 품질검사를 한 결과 전체의 42%인 25개 제품이 불합격 판정을 받아 판매를 금지시켰다고 19일 밝혔다. 대부분 유럽에서 직수입된 제품들이다.

조사를 받은 상표는 아르마니.버버리.샤넬.크리스찬 디오르.망고.폴로.자라 등이다. 상하이시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된 자라 치마는 전량 회수했다고 덧붙였다. 샤넬과 망고 제품은 산성도가 기준치를 초과해 불합격 처리됐다.

◆해당 업체들 반발=상하이시 발표 이후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에서도 거론된 의류 제품의 매출이 급감하고 있다. 상하이시의 한 샤넬 매장 주인은 "지난 주말 판매실적이 앞주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의 대표적인 쇼핑거리인 코스웨이베이의 유럽 명품 매장들도 한산한 주말을 보냈다. 한 매장 직원은 "'일부 브랜드 제품에 포름알데히드가 함유돼 있었다는데 정말이냐'며 발길을 돌리는 고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상하이시의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샤넬과 버버리 홍콩본부는 "문제의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하겠지만 품질에 하자가 있다는 지적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해 9월 일본 화장품 SKⅡ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며 제품을 회수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조치는 일본 정부가 중국산 장어 등 일부 식품의 품질을 문제삼아 수입을 제한하자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전쟁의 서곡인가=홍콩 청스(城市) 대학의 쑹리궁(宋立功) 교수는 "중국과 EU는 현재 여러 가지 통상 현안을 안고 있다"며 "여기에 EU의 대중국 무기수출 금지가 얹혀져 무역대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EU의 고위 외교관이 최근 중국을 방문해 "중국 정부가 인권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한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계속되고 있는 EU의 대중국 무기수출 금지조치를 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정치적 편견에서 비롯된 잘못된 생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상하이청년보 등 현지 언론은 "공상국의 이번 조사는 중앙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며, 정치적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네티즌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인터넷 토론방인 왕이룬탄(網易論壇)에는 "제재는 EU만의 전권이 아니다. 중국도 반격할 수 있다""(중국의) 보복이 시작됐다""맹목적으로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U의 대(對)중국 무기 금수조치=중국 정부는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天安門)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인권문제가 개선될 때까지 중국에 무기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지난해 프랑스와 독일이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을 고려해 이 조치를 풀려고 했으나 미국과 일본의 반대로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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