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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노조 정권이 망쳤다 ①거듭된 ‘깽판=승리’에 막가파식 돌진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이번에도 현대차 노조의 위력이 다시 한번 전 국민의 가슴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한국 경제와 회사가 망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며 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가 이번만은 혼쭐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더구나 도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노조위원장이 회사측으로부터 2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럼에도 노조는 끄떡없이 밀린 성과급 50%를 받는 ‘성과’를 올리고 유유히 파업을 풀었다. 이번 파업 사태에서 현대차 노조는 성역이자 권력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누가 이들을 법 위에 군림하는 노동 귀족으로 만들었는가? 표를 의식한 정권의 노동계에 대한 아부와 철학없는 친 노동정책의 산물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 줄 모르고 집단 주술에 걸린 것 처럼 일 터를 내팽개치는 현대차 노조를 해부했다.

장면#1=지난 2005년 3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4공장의 포터ㆍ스타렉스 생산라인 주간조 근로자 1300여명은 작업물량이 없어 2주 이상 쉬었다. 5공장의 테라칸 생산라인도 재고가 넘쳐 주간 6시간만 근무했다. 바로 옆에 있는 울산공장 1공장의 클릭ㆍ베르나 생산라인과 2공장의 싼타페ㆍ투싼 라인, 3공장의 아반떼XDㆍ투스카니 라인은 주ㆍ야간조 2시간 잔업도 부족해 주말 특근까지 해야 했다. 수출이 30%나 늘어나 일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한 회사내에서 한쪽은 놀고 있고, 한쪽은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하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상식적으로 봐도 4ㆍ5공장 여유인력을 숨가쁜 1ㆍ2ㆍ3 공장 라인에 투입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회사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 단체협약상 조합원 전환배치는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노조는 “해외공장을 설립해 국내 생산물량이 줄어든 때문”이라며 전환배치를 거부했다.

장면#2=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 현대차를 수출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난해 연말 기자와 만나 분통을 터뜨렸다. 버스와 트럭 등 상용차를 주로 수출하는 그는 “차가 모자라 팔 수가 없다”고 했다. 주문을 못 따라 갈 정도로 현대차 인기가 높은데 그가 왜 분노를 표출했을까?

사실은 이렇다. 베트남 등 신흥시장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버스, 트럭의 수요가 늘어났고 현대차도 자연스럽게 판로가 늘어나고 있는데 공장에서 제때 공급을 못해준다는 것이었다. 벌써 6개월치 주문이 밀려있는데 노조의 반대로 2교대 근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전주공장은 연간 10만대 생산규모지만, 2교대 전환을 하지 못해 연간 5만대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렵게 만들어 놓은 고객들이 하나둘씩 도요타 등 일본차 쪽으로 거래선을 돌리고 있다”며 소리를 높였다. 1년 넘게 노사 협상을 벌여온 끝에 올초부터 전주 공장은 2교대 근무에 합의 했지만 떠난 고객들이 다시 돌아올지는 의문이다.

주문량 폭주해도 “증산 안돼”

장면#3=1998년은 IMF 체제로 환란이 일어난 다음 해였고, 대한민국에 있는 직장치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현대차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 평소의 154만여 대 생산을 91만 대 정도로 40% 이상 축소시키면서 나름대로는 발 빠르게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작업물량이 줄어들고 생산라인 가동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1월부터 5월까지의 가동률이 40%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이쯤 되자 공장 내에서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엄청난 휴무 인원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에서도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합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36일간의 파업 끝에 당초 6700여 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270명으로 줄였다. 그나마 해고자 중에 생산인력은 2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식당 종업원과 부대시설 종사자였다.

장면#4=현대차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첫 럭셔리 카인 ‘BH(프로젝트명)’ 의 출시가 늦어졌다. 올해 말에 출시하려던 BH는 내년 상반기로 연기됐는데 여기에도 노조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BH 출시가 늦어진 것은 무엇보다 노조와의 갈등으로 전용공장 설립이 늦어진 탓이 크다.
현대차는 당초 올해 5월께 울산 5공장 주차장 용지에 새 공장을 건설해 내년 하반기 쯤 BH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주차장이 없어지면 직원들이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노조원들은 다른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멀어서 불편하니 주차빌딩을 설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노사 합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말에야 1852억원을 투자해 울산5공장 증설에 착수했다. 공장 설립이 당초 예상보다 6개월가량 늦어진 셈이다.

이런 사례를 수집하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위에 예로 든 네가지 사례는 노조의 경영권 침해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노조 자체의 비리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노조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더 많다. 지난해 문제가 된 ‘취업장사’가 대표적이고 올해는 ‘납품업체 비리’도 드러났다. 노조 사상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되는 2003년 단체협약을 이끌어낸 이헌구 당시 노조위원장이 회사로 부터 2억원의 금품 수수를 한 일도 있다. 일상적으로 각 조립라인의 관리 책임자인 부서장보다 힘이 센 대의원들의 ‘횡포’도 문제다. 서중석 현대차 신노동연합 대표는 지난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의원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문제가 없는 작업 라인도 임의로 세운다”고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이번에는 성과급 문제로 시무식에서 난동을 부려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했다. 현대차 노조가 왜 이렇게 됐을까? 1987년 시작된 현대차 노조 파업의 분수령은 1998년과 2003년으로 볼 수 있다.

1998, 2003년 파업으로 무소불위

1998년 8월, 현대차는 창사 이래 최장기간인 36일간의 파업으로 회사가 만신창이가 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협상을 중재 했었다. 등 떠밀린 사측은 노조와 어정쩡한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5000여명 이상 계획했던 정리해고는 270명으로 줄면서 노조는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 승리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노무현 민주당 부총재와 이기호 노동부 장관이 노사 양측에 서 있다.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승리한 노조는 사측과의 대결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DJ정권 출범 초기였던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내던 노무현 대통령은 중재단장의 신분으로 현대자동차와 노조의 협상을 조율했다. 결과는 당초 구조조정 예정이던 인원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백명만을 해고하는 데 그쳤다. 2년 후인 2001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우차판매의 요청으로 대우차 신문광고 모델로 나서게 된다. 당시 노 고문 측은 “지난 98년 현대차 파업사태 중재 경험과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과정 개입, 지난 5월 대우차 매각과 관련한 중재 노력 등 노무현 고문이 한국자동차 산업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 국민들에게 인식이 높아 광고모델 요청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모델요청 수락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은 당시 노무현 부총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개입해 일방적으로 노조의 편을 들었다고 진단했다.
공장 폐쇄, 조합원 해고, 전환배치, 차종 이관 등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을 노조와 합의 없이 불가능하게 한 2003년 단체협약에도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당시 단체협상 결과에 대해 중앙일보는 ‘재계에선 현대차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압력 ▶3대 핵심 쟁점에 대한 노동계의 강경 투쟁 의지 ▶파업 장기화에 따른 내수 및 수출 마비 ▶정몽헌 회장 자살 등으로 벼랑끝에 몰린 고육지책을 내놓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가 회사 측으로선 5일 협상 타결에 압력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부로부터 어떠한 메시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궁색하게 해명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교섭 결렬에 따른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이 노사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는 데다 회사 측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도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였던 당시 정치적 환경은 노조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참여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인 권기홍 장관은 취임직 후 “노동부는 정부 안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노동편향이라면 편향하겠다”고 소신을 펼쳤다. 또 2003년 3월 두산중공업 파업사태가 악화되자 직접 현장에 달려가 노사 중재를 펴는 등 적극적 행보를 펼쳤다. 당시 두산 중공업 중재는 지나치게 노조의 편을 들어줬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 현대차 노조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2003년 단체협약이다.

임금은 선진국, 생산성은 후진국

두번의 결정적인 고비에 정권의 개입이나 묵인하에 현대차 노조는 대한민국의 대표노조로 성장했다. 하지만 생산성을 따져보면 현대차 노조가 대한민국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현대차 임금은 총 42.39%(매년 평균 8.4%)의 높은 인상률을 보인 반면, 생산대수는 연 평균 1.4% 성장하는데 그쳤다. 평균 8.4% 임금 인상은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 3.3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처럼 고임금 저생산 구조의 배경에는 파업에 따른 손실이 크다.
2001년~2005년까지 파업으로 인해 33만3870대의 생산 차질 생겼고,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생산대수(6백53만7835대)의 5%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자동차 업계의 노동생산성을 비교하는 지표인 차 1대당 제작소요시간(2004년 기준)을 비교해 보면 닛산이 18.3시간, 도요타가 19.5시간으로 현대차의 33.1시간에 비해 월등히 짧다. 최근 구조조정과 공장매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GM(23.1시간)이나 포드(24.5시간)도 현대차 보다 제작 소요시간이 짧다. 그만큼 현대차의 생산성이 뒤진다는 뜻이다.
‘고임금 저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임금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성과급 문제로 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회사 측은 이번에도 조기타결이라는 미봉책으로 사태를 마무리 지었다.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도 주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회사가 아니라 노조가 경영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간다면 현대차 노조가 올해도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급은 경영진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주는 것이다. 도요타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의 첫번째 기준을 ‘회사가 처한 환경’이라고 했다. 노사화합을 기본으로 3년째 1조원대 이익을 내며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을 넘보고 있는 도요타는 지난해 기본급을 월 1000엔 올리는데 그쳤지만 2006년 보너스로 230만엔(약 1800만원)을 받았다. 누가 더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세살짜리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다.

이석호 기자ㆍ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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