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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부양책이 안은 함정(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13일 발표된 증시안정대책은 주식시가발행 할인율의 자율화,증권회사에 대한 1조원 규모의 주식교환사채 발행 허용,정부 및 대주주 보유주식의 매각억제와 주식담보대출의 활성화등 몇가지 제도개선을 골자로 하고 있다.
증시가 2년이상 장기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주된 원인이 투자의욕의 감퇴에 있는 만큼 유상증자때 적용되던 시가발행 할인율에 대한 규제를 철폐,새로 발행되는 주식의 발행가액을 액면가 수준으로까지 낮추어 발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가와 발행가의 차액 확대를 미끼로 투자를 유도해 보겠다는 취지는 일응 이해할 만하다.
또 그동안 증시를 받치기 위해 보유주식을 늘릴 수 밖에 없었던 증권회사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증권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교환사채 발행의 길을 터준 것도 있음직한 조치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같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를 대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기문제다. 물론 증권시장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종합주가지수가 6백선을 위협하는 상황을 위기로 보고 어떤 형태로든 손을 써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증시침체는 갑작스런 일이 아니며 종합주가지수 6백이라는 것도 그것이 증시의 안위를 가름할 정도의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동안 관망만 하다가 하필 광역선거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부양책이라는 것을 내놓았다는 것은 이번 조치가 아무리 선거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선거용이라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많은 증시전문가들이 경기호전이나 내년으로 임박한 자본시장개방 등 여건의 변화를 들어 자력에 의한 증시호전을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시점에서 경기의 규칙을 바꾸는 것과 같은 제도개선방안이 꼭 나와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개선방안이 내포하는 문제점도 적지 않다. 잘 알다시피 과거 시가발행 할인율을 정했던 것은 시가와 신규발행주식의 액면가와의 차이를 줄여 투기적 요소를 억제하고 내부자 거래의 폐단을 없애보겠다는 취지였다.
이것은 또 자본시장 개방을 앞두고 주식발행 가격결정을 국제관행에 접근시키는 동시에 애써 기업이 이룩한 국부의 유출을 막아보자는 의도도 담겨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시가발행 할인율의 자율화조치는 이같은 당초의 의도를 포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본시장 개방이 몇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같은 제도상의 후퇴가 바람직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았어야 할 일이다.
교환사채 발행에 대한 자금조달도 보유주식의 주가상승에 의해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증권투자는 어차피 투기를 동반하는 머니게임이다. 게임을 관리하는 당국이 신경을 써야할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아니라 경기규칙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제대로 지켜지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함부로 규칙을 바꾸는 일은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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