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말린 화염병시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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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 고려대생들의 가두 데모를 인근 주민들이 몸으로 막고 나선 것은 요즈음 학생들의 과격시위에 대한 국민의 의사표출이란 점에서 주목되는 선례다.
5월과 6월에 걸쳐 한달이상 계속되고 있는 학생들의 시위,화염병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폭력가투를 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과 시위의 동기에 대해 공감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행태 자체와 이로 인한 거리질서의 혼란과 사회불안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는데 대해 많은 국민들이 진저리를 쳐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시점에서 발생한 외국어대에서의 총리폭행사건은 국민들에게 과격학생시위의 도덕성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과 계기를 제공하게 됐다. 학생들의 폭력시위를 이제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일반국민들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날 2백여명의 제기동 주민들은 학생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해라』『화염병 던지지 말라』『시위도 그만해라』『경찰도 최루탄 쏘지말라』고 외쳐대며 항의했다고 한다.
이들은 대부분 이 동네 길가에 상점을 경영하는 상인들로 그들이 거의 날마다 당해온 고통을 참는데도 이제 한계에 이르렀음을 행동으로 표시한 것이다.
우선 시위가 벌어지면 최루탄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가게문을 닫아야 하므로 생계가 위협을 받고,화염병이 사방에서 터지니 집에 불이나 붙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간판이나 문짝이 타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한다.
이런 피해와 불안은 비단 제기동뿐만 아니라 폭력시위가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나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당하는 일이다.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는 백병원의 환자들이 며칠전에 벌인 항의도 같은 맥락의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위학생들은 자기들이 주장하고,관철시키려는 「목표」가 훨씬 중요하고 거창한 것이므로 이러한 주민의 불편 쯤은 사소한 것으로 보고 묵살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들 스스로가 내건 대중 노선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 극렬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해 사회전체가 불안해 지고 주민들이 실제적인 피해를 보았을 때 그들은 어디에서 지지와 호응을 얻겠다는 것인가. 경찰이 평화적 시위를 막기 때문에 폭력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론도 설득력이 약하다.
시위를 시작했다 하면 차도와 인도를 가리지 않고 점거해 버리며,집회장소도 반드시 도심 한복판의 교통요지만을 고집하니,이게 어떻게 평화적 시위인가. 그것도 6월항쟁때처럼 전국민이 공감하고 합의한 목표라면 몰라도 지금 학생들이 주장하는 「정권타도」따위는 거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학생들의 극렬한 시위와 폭력적인 가투의 연속에 지치고 염증을 느끼고 있다. 시위를 하려면 시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고 불안감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도 얼마든지 방법은 있을 것이다. 5일 제기동 주민들의 행동에서 국민의 뜻을 읽고 학생들의 시위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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