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과 사제윤리 구별했어야|채경숙 <서울용산구 한남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교육현장에서, 그것도「지성의 전당」이라고 자처하는 곳에서 한나라의 재상이 학생들로부터 밀가루·계란세례를 받고 30분간이나 끌려 다닌 사건이 일어났다.
정원식 총리서리가 3일 오후 자신이 시간강사로 출강하던 한국외국어대에 마지막 강의를 하러갔다가 강의를 끝내고 나오다 3백여명의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에 계란·밀가루를 맞고 발길질과 온갖 욕설을 당한 것이다.
보도를 접한 시민으로서 뭐라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도대체 할말이 없다. 우리 사회의 실정이 부끄러울 뿐이다.
폭행 당하고 있는 정 총리서리의 모습은 외신을 타고 전세계 사람들이 다 보았을 것이다. 우리의 치부는 이미 국제사회에 알려 절대로 알려진 만큼 이제 와서 새삼 외국에 우리가 어떻게 비쳐질까를 걱정할 것까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됐나를 따지는 것도 이젠 진부할 정도가 됐다.
잘 알려진 대로 정 총리서리는 문교부장관시절 1천5백여 명에 달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교단에서 쫓아낸 장본인이라 해 일부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터였다.
그런 정 총리서리가 어째서 아무런 대비도 없이 불쑥 학교를 찾았는지 의아스럽다.
정 총리서리 자신이나 이 같은 사태를 예상치 못한 총리서리 측근들의 단견이 그들의 막중한 공적지위를 감안할 때 한심스럽다. 결과적으로 볼 때 총리자신도 잘못 판단한 처신으로 인해 국가적수 치의 사건을 빚은 셈이 아닌가.
사건현장의 운동권 학생들은 자신들이 싫어하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의사표시를 하다니 도저히 정상적 의식의 소유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학교 안에서 국가사회의 한 대표적 권위를 이토록 처참하게 짓밟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한다면 더 이상 학교는「성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난동의 주인공들은 결코 학생일수 없고 정치세력으로 이해할 수도 없으며 오로지 반사회적 폭력배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회의 안녕을 위해 뿌리 뽑혀져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