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병 유전자 검사, 근거 약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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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에 사는 박모(39.여)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지능.적성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 D유전자검사 업체에 검사를 의뢰했다. 유전자 검사와 상담까지 이뤄진 패키지 검사에 15만원 정도가 들어갔다. 결과는 "수리적 능력은 떨어지는 대신 감성이 일반 아이들보다 훨씬 뛰어나므로 예술 계통으로 키우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아이가 좋아하는 미술을 집중적으로 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하반기부터 박씨의 아이가 받은 것과 같은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한 유전자 검사가 금지될 전망이다. 금지되는 유전자 검사는 비만.지능.체력.호기심.폭력성.장수(長壽).우울증.천식.폐암.알코올분해.당뇨병.골다공증.고혈압.고지혈증 등 14개 항목이다. 금지된 검사를 하다 적발되는 기관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단 암 고위험군, 유방암, 치매, 키, 백혈병, 강직성 척추염 등 6개 항목의 유전자 검사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한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연구를 목적으로 기관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의 심의를 거친 경우에는 금지 항목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내용의 지침을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했다고 17일 발표했다. 올 상반기 중 대통령령이 만들어지는 대로 시행할 예정이다.

복지부가 유전자 검사를 제한하는 것은 최근 유전자 검사가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현재 유전자 검사는 173개 의료기관과 바이오벤처 업체에서 실시하고 있다. 이 중 30여 개 바이오벤처 업체에선 상업적 목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이용하고 있다. 개별 검사비는 3만~8만원 수준이다. 여러 항목을 묶어 검사한 뒤 상담까지 해주는 패키지 프로그램은 최고 4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양병국 복지부 생명윤리팀장은 "일부 유전자 검사기관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과학적 입증이 불확실한 유전자 검사를 무분별하게 실시하고 그 폐해를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 전문가들이 일부 유전자 검사의 과학적.윤리적 타당성을 검토한 끝에 지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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