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발칙한 … 미국에 사정없이 '똥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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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랏-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이하 보랏.25일 개봉)는 성이건, 정치건 다방면에서 메가톤급 뻔뻔함으로 무장한 코미디다.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로 놓고 보면 지독하게 못돼 먹었다. 그런데 웃긴다. 아니, 그래서 웃긴다. 뒤집어 말하자면 겁 없는 풍자다. 지구상의 영화가 그려낼 수 있는 속칭 '겁대가리 없음'의 최전선이 바로 이 영화에 들어 있다.

주인공 보랏(사샤 바론 코헨)은 극중 카자흐스탄의 TV 리포터다. 선진 미국의 문화를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을 횡단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선다. 정작 미국에 대한 그의 인식은 포르노 잡지 수준이다. 첫발을 디딘 뉴욕에서부터 길가에서 아무 여자나 입맞출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인 듯 행동한다. 미국을 당황시키는 보랏의 행태는 그칠 줄 모르고, 풍자의 과녁이 미국인 것도 뚜렷해진다. 로데오를 보러온 미국 관중 앞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인사말을 건넨 뒤엔 미국 국가를 제멋대로 바꿔 부르는데, 실은 미국의 대외정책을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게 만드는 내용이다. 미국식 매너를 배운다는 명분으로 중산층 가정을 방문해서는 얼토당토않은 행동거지로 결국 점잖은 미국인들의 얼굴에서 노골적인 불쾌감을 끌어낸다. 대개의 코미디들이 선량한(!) 일반 대중을 희화화하는 것은 금기로 삼건만, 보랏에게는 금기의 선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이 영화가 희한하다 못해 특출한 경지에 이른 것이 바로 이런 점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주연을 맡은 사샤 바론 코헨은 비슷한 성격의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이미 영국에서 유명한 코미디언이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 보랏 역시 그가 TV 코미디에서 이미 선보였던 캐릭터다. 가짜 다큐멘터리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영화의 실제 제작과정은 극중 다큐를 찍는 과정과 흡사했다. 소수의 제작진이 카자흐스탄과 미국 각지를 이동하며 게릴라식으로 촬영했다. 덕분에 별별 에피소드가 많다. 영화의 촬영지인 루마니아 주민들이나 영화에 나오는 미국인들 중 일부가 나중에 소송을 제기한 게 대표적이다. 진짜 다큐멘터리를 찍는 줄 알았지, 이런 영화인 줄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미국 개봉을 앞두고 카자흐스탄이 정부 차원의 대응을 고려했던 것은 이 영화의 유명세를 더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이 영화와 실제 카자흐스탄은 다르다.

후안무치도 이 정도 수준이면 큰 보상을 받으니, 코미디는 참 재미있는 장르다. 미국 내 흥행 성공에다가 미국영화연구소처럼 제법 안목 있는 단체의 '2006년 10대 영화'에 뽑혔다. 주연배우 코헨은 이틀 전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영화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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