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장 이 문제] 중소 기업인 울린 '핑퐁' 행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모화중소기업단지. 경주에서 7번 국도를 따라가다 울산을 눈앞에 두고 왼쪽 산자락에 들어선 조그마한 공단이다. 울산의 배후공단으로 자동차부품.기계 등 30여업체가 들어서 있다.

언덕배기 끝에 자리잡은 자동차부품업체인 ㈜진흥. 이 업체는 지난해 11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공장 확장 허가를 신청했지만 10개월 만인 지난 9월 '불가'판정을 받았다.

이 업체의 투자자이자 공장 확장업무를 담당한 정영주(55)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난다"며 연신 담배를 빼물었다. 그는 "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유도 납득할 수 없지만 10개월간 민원인을 '뺑뺑이' 돌린 경주시와 문화재청은 대체 어느 나라 관청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진흥이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지난해 7월. 승용차 문의 손잡이 부품을 만들어 현대자동차의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진흥은 지난해 3월 경주시로부터 공장시설 및 건축허가를 받아 이곳 1천5백㎡에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주문 물량이 쏟아져 그해 11월 공장과 이어진 임야 4천2백여㎡를 사들여 공장을 확장하기로 했다. 이곳은 잡목이 자라는 야산 지역이다.

진흥은 시가 요구한 환경성사전검토보고서 등 세가지 서류를 작성해 제출했다. 비용으로 1천8백50만원이 들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어 허가가 날 것으로 생각했던 그에게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으라는 추가 요구가 떨어졌다. 인근에 문화재인 관문성(사적 제48호)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당초 진흥의 신축 허가뿐만 아니라 옆에 붙은 D.Y업체와 또다른 D업체도 지난해 허가를 받았지만 이런 절차를 요구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장 증설이 급한 나머지 지난 1월 6백만원을 들여 다시 서류를 작성, 경주시에 제출했다. 두달 뒤 돌아온 답변은 '관문성 주변의 자연경관을 훼손하게 되므로 보존 관리상 안된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이같은 절차가 왜 필요한지 물었지만 경주시 담당자는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을 들락거린 끝에 "면적을 줄여 다시 신청하라"는 말을 듣고 두차례나 공장 확장 면적을 줄여 신청했지만 끝내 허가는 나지 않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경주시가 문화재청에 보낼 공문을 한달 넘게 처리하지 않아 시간만 낭비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업체는 결국 초과 주문 물량을 다른 업체로 넘겨야 했다.

이에 대해 경주시 관계자는 "공장 확장은 관문성 주변의 경관을 해칠 수 있어 규정상 현상변경 허가를 받도록 했을 뿐"이라며 "하지만 다른 부서와 협의과정에서 일 처리가 지연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