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실 못하는 인천항/홍승일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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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27일 오후 인천·부산 두항구 외항에는 모두 66척의 배가 묶여 있었다.
인천항에는 40척의 배가 부두를 채우고 있었고 외항에는 들어오라는 지시를 기다리며 떠있는 배가 56척이나 됐다.
부근공단에 들어 있는 전자업체는 이같은 장기체선·체화 때문에 코앞의 인천항을 놔두고 수출화물을 사정이 다소 나은 부산항까지 육로로 실어 나르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인청항 적체는 결국 경인·경부고속도로의 적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인천항은 이제 한마디로 항만구실을 못하고 있다.
부산항도 인천보다는 덜하지만 만성적인 체증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총 교역량의 99.7%가 해상으로 운송되고 인천·부산이 수출입화물의 95%를 소화해 내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이같은 체증현상은 곧바로 무역에 초비상이 걸리게 만들고 있다.
항만적체로 인한 직·간접 손실은 89년 5천억원,지난해 7천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물건을 열심히 잘 만들어 놓고도 부둣가에다 한해 수천억원을 버리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는가.
단순히 투자재원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올들어 청와대가 직접 사회간접자본투자기획단을 설립,민자까지 끌어들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항만시설,하역능력 확대가 1∼2년에 이뤄질 수는 없다.
정부도 완전히 손을 놓았던 것은 아니다.
오는 6월 85년부터 건설해온 부산 3단계 컨테이너 부두가 완공될 예정이고,광양항 개발도 민자유치의 어려움은 있지만 의욕적으로 추진되고는 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항만적체가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2천년대까지 해마다 2천만t씩 물동량이 늘어난다면 물동량 6천3백만t인 부산항만한 항구를 3년마다 1개씩 건설해야 하는 셈이다.
당장 눈에 띄는 일에만 치중해온 예산사업,잘못된 수요예측과 앞가림만 하면 된다는 무사안일,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이처럼 답답한 사태를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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