色의 마술사 사랑을 펼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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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마술사, 색채 향연의 지휘자-.

지난해 11월 '화업(畵業: 그림을 직업으로 삼음) 50년 회고전'을 가진 강정완(74)화백을 일컫는 말이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2000여명이 참석, 대성황을 이뤘다. 개인전 사상 최다기록이다. 국내보다 파리 등 유럽에서 더 알려진 강 화백으로선 놀랍고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회갑을 넘긴 후 그림 주제를 '사랑'으로 잡았다. 마침 고국 화단이 보여준 사랑에 창작욕이 새롭게 불붙고 있다."

그는 용솟음치는 에너지를 그림에 쏟아 몇년 내 대규모 개인전을 열겠다는 포부를 털어놨다. 1000호짜리 초대형 작품에도 도전할 작정이다. "내 그림을 산 분들은 내가 죽어 그림 값이 오르길 바라겠지만 지금 컨디션이면 100살까지도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4년전부터 성남 분당의 불곡산 기슭 단독주택에서 큰아들 가족과 함께 산다. 그러나 1년의 반은 파리 남쪽의 교외에서 보낸다. 현지 정부가 '중요 화가'들을 위해 화실을 마련해 줬다. 프랑스는 강 화백이 지난 30여년간 그림 열정을 마음껏 펼 수 있도록 도와준 나라다.

프랑스와의 인연은 1975년 '늦은' 나이에 국전(國展)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시작했다. 이듬해 부상으로 유학 특전이 주어졌다. 자녀 4명이 있는 가장으로선 큰 모험이었다.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다니면서 몽마르트르에서 관광객 상대로 초상화와 파리 풍경화를 그려 팔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숙소에서 내려다 뵈는 센강변 밤 풍경에서 색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센강 유람선, 상점의 네온사인 간판, 가로등 불빛 등 파리의 밤 경치가 나를 매료시켰다." 거기서 얻은 느낌을 정신없이 화폭에 옮겼다. "밥은 굶어도, 좋은 색을 낼 수 있는 물감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색에 대한 집착이 큰 상을 불러왔다. 78년 몬테카를로 국제현대미술전 최고상인 모나코국왕상을 탔다. 81년 프랑스에서 첫 전시회가 열리자 현지 언론의 찬사가 쏟아졌다. 르 피가로가 그를 '색의 마술사'라고 처음 불렀다. 르 몽드는 "한국 풍경과 파리의 인상을 부드러운 시처럼 영감이 깃든 색으로 풀었다"고 했다.

그는 파리서 작업을 하지만 향토성 짙은 그림들이 많다. 경남 산청이 고향인 강 화백은 어린 시절을 또렷이 기억한다. 지난해 추석 명절때 들떴던 추억을 고스란히 화폭에 담았다. 둥근 달을 배경으로 농악대의 화려한 몸놀림이 역동적인 붓 터치로 그려졌다. 90년에 그린 농악은 우리나라 고교 미술책에 실리기도 했다.

어릴 적 그의 집은 가난했다. 진주사범학교 3학년이던 53년 어머니가 갑작스레 콩팥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돈이 없었다. 그는 진주 촉석루를 그린 그림 한장을 들고 병원을 찾아갔다. "내가 정성들여 그린 그림입니다. 나중에 수술비를 갚을테니 대신 받아 주십시오." 병원장은 그의 당돌한 제의를 흔쾌히 받아줬다. 그는 회갑기념 화집을 내며 '(어머니를 살린) 귀한 그림'을 수소문했다. 작고한 병원장의 손자로부터 소식이 왔다. 통사정한 끝에 훨씬 비싼 자신의 그림으로 보답하고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의 그림은 더욱 젊어지고 있다. 30년 전 강 화백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나이를 정확히 알아맞췄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20, 30대 화가가 그렸을 것으로 추측하곤 한다. 강렬한 색에서 젊은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적홍색과 자줏빛의 화려한 혼합, 타는 듯한 황토빛과 초록의 대조가 활력을 뿜어내는 가운데 사랑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유명한 프랑스 전위미술전 '살롱 드 메' 설립자인 가스통 디엘의 평이다.

강 화백은 가끔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담임교사를 떠올리곤 한다. "세상엔 너만의 풍경이 있고 너만이 가질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미술 전공자였던 담임은 그림을 잘 그리던 한 아이를 줄곧 격려했다. 그 격려는 지금의 강 화백을 있게한 실마리가 됐다.

성남아트센터 이종덕 사장은 "성남에 터를 잡은 강 화백이 지역 화단의 지평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며 "그는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는 성남시에 대들보 같은 존재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은 홈페이지(www.kcaf.or.kr/art500/kangjeongwan)에서 볼 수 있다.

프리미엄 조한필 기자
사진=프리미엄 이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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