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아직 정신 못 차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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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찰의 과잉 진압이 여전하다.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강경대군 사건이 「돌풍시국」을 몰고 와 끝내 국무총리 경질까지 빚었으나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은 과격한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
경찰은 강군 사건 직후 관련 전경들을 구속하면서『앞으로의 시위 대책은 군중 해산 위주로 해나가겠으며 공식 진압 장비 외에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 같은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전국의 시위 현장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학생·시민·근로자들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광주에서는 지난 21일밤 권창수씨(22·무직)가 시위대에 휩쓸렸다가 전경들에게 붙잡혀 각목·방패로 얻어맞고 구둣발에 짓밟혀 머리 등에 심한 상처를 입어 전남대병원에서 치료중이나 3일째 중태에 빠져있다.
23일 오후에는 목포대 정문 앞에서「분신투쟁정신 계승결의 대회」에 참가했던 대학생 박동선군(21), 광주시 조선대 앞에서 시위 중이던 김길현군(21)등이 경찰 쪽에서 날아온 돌과 KP직격탄을 안경낀 눈에 맞아 실명위기에 놓였다.
광주 권씨 경우 그나마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서 폭행한 전경들을 가려내 구속함으로써 과잉 진압 사실을 확인해 주었으나 제주에서는 경찰의 무모한 가혹행위 피해자가 속출하고있는데도 당국이 원인 규명에조차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북제주군 조천농민회 교육부장 전우홍씨(29)는 제주시 중앙로 덕성의원 앞에서 연좌 시위중 경찰에 연행된 뒤 뇌좌상 증세로 제주한국병원에 입원, 6일째 사경을 헤매고 있으나 검찰·경찰 어느쪽도 이에 대한 수사나 자체조사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지난달 29일에도 고규형군(24·제주대자연과학대 학생회장)이 시위 진압 경찰에 쫓겨 달아나다 3층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허리골절상을 입고 가료 중이다.
이 두사건에 대해 제주도 농민회·제민협·제주대 총학생회 등은 경찰의 과잉진압 현장목격자·진단서 등 각종 증거물까지 제시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나 묵살되고 있다.
특히 고군의 경우 경찰이「해산위주의 시위대책」은 뒷전으로 미루고 여전히 체포조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음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광주 권씨의 경우도 경찰이 권씨가 시위에 가담했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공식진압 장비가 아닌 각목까지 동원하고, 권씨가 피투성이가 되어 실신했는데도 병원 이송 등의 사후조치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경찰책임자에 대한 사후보고조차 6시간이나 지난후 이루어졌다는 점등으로 강군 사건 이후 전국 경찰의 시위 진압 대책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셈이다.
더군다나 검찰은 비록 권씨를 집단 폭행한 전경들을 구속하기는 했으나「이번 사건은 시위진압에 출동한 전경들의 충동적인 행위로 빚어졌다」는 이유와「폭행을 지시 또는 공모하거나 직무 유기 등의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경찰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을 미룸으로써 시위현장에서의 전경들 횡포를 상급자들이 눈감아주어도 지휘·통솔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전례를 남겼다.
결국 시위진압을 직접 담당하는 경찰이나 이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할 당국조차 시위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전경들의 과잉진압·가혹행위 등을 뿌리뽑을 수 없다는 얘기다.【광주=임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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