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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병」 실태와 슬기로운 극복 방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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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입시학원 등에서는 30여만명을 헤아리는 재수생들이 험난한 대입관문 재도전에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에게는 5월이 고비다. 피곤하고 자꾸 졸음이 쏟아지며 왠지 밥맛도 없고 의욕이 떨어지는 이른바「5월병」에 휘청거리기 쉽다.
낙방의 충격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재도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재수생들에게 승패의 갈림길이 되는「5월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재수생 본인의 인내와 지혜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주위의 따뜻한 격려·배려도 필요하다.

<당구장 찾는 일 많아>
◇실태=최근 경기도 광주 소재 모 기술학원에서 재수하던 김모군(18)은 서울 시내 일반입시학원으로 옮기려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꽉 짜인 틀에 질식할 것 같고 공부의 효율도 떨어져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다』는 호소다.
그러나 서울 종로학원 정하일 상담실장은 양군의 심리 상태를 전형적인 「5월병」이라고 분석했다.
3, 4월은「한번 해보자」는 투지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보내지만 5월이 되면 차츰 느슨해지면서 자기 자신과 특히 주변 여건에 회의가 커지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학원가에는 양군과 같은 동기에서「물갈이」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강의 수준을 따라갈 수 없어서」「공부해 봐야 진학 가능성이 없으므로」등 이유로 학원을 옮기거나 중도 포기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재수하는 아들을 둔 이영옥씨(47·여·서울개포동)는 최근 학원 상담실을 찾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성적이 형편없이 떨어져 명문대는커녕 4년제 대학 진학도 보장하지 못하겠다』는 학원측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뒤늦게 아들이 학원보다 당구장에 개근하는 것을 알게됐다.
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노량진에서 당구장을 경영하는 이모씨(40)는『요즘 재수생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며『해마다 이맘때면 손님이 몰리기 시작, 이른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울시 교육청 학교 건강 관리소 서성제 소장은『외로움을 자각한데서 오는 일종의 우울증 때문』이라고 밝혔다.
낙방때는 낙방 사실에만 충격을 받아 이를 어느 정도 극복하고 공부에 진력하지만 문득 돌아보면 자신의 주위 환경이 달라져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때가 5월이라는 것.
부모·친지들이 어쩐지 피하는 것 같고 얘기도 잘 들어주지 않으며, 길가는 사람조차 자신이 재수생인 것을 아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심한 외로움에 빠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는 주위의 사랑과 대화만이 치유할 수 있는 길이고 이것이 결핍되면 유혹의 덫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강박 관념이 병불러>
또한 이때쯤 재수생들은『속이 쓰리다』『머리가 아프다』는 등 각종질환을 호소하게 된다.
서 소장은 이같은 질환이『강박관념에서 오는 신경성 증세』라며 안정과 휴식이 필요하다는 신체적 신호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 청소년 사업단이 지난해 재수생 4백6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위장병(27.5%)▲두통(24.5%)▲무기력(13.7%)▲현기증(9.8%)▲불안증(5.9%)▲불면증(4.9%)등 순으로 질환을 호소했다.
◇대책=재수생의 유형에는▲투쟁형▲도피체념형▲방황형이 있다고 중앙대 의대 이길홍 교수(신경정신과)는 분석하고 이에 따라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쟁형은 재수·삼수를 통해서라도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힘으로 재도전에도 불구, 일정한 성과가 없으면 인격 손상을 일으키게 돼 막다른 행동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목표를 한 두단계 낮추도록 조언, 조그마한 성취감이라도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도피체념형은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될대로 돼라는 식의 자포 자기형으로 이 경우는 무리하게 대학 진학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기술 학원 등을 통한 사회 진출을 모색하도록 부모가 배려해야 한다.
방황형은 재수 대학생이 전형으로 아무 대학에나 일단 적을 두고 시험준비를 하다 여의치 못하면 중도 포기하는 형.

<목적의식 갖게 해야>
종로학원 정하일 상담실장은『이 경우는 자칫하면 대학 생활도, 만족스런 재수성과도 얻지 못하고 세월만 허송한 채 열등감·좌절감만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실장은『꼭 재수하러거든 자퇴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권유한다.
도피할 통로가 있으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중도 포기하기 쉽고 그만큼 긴장감이 해이해져 공부의 효율도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입시전문가들은『흔들리는 재수생들에게는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신감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서울시 청소년 사업단의 설문 조사에서도 재수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대학 진학에 대한 목적 의식 약화」(39.7%)가 꼽혔다.
따라서 부모들은 막연히『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식의 강요보다는 왜 대학에 진학해야하는지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이밖에 애로점으로▲건강(22%)▲돈(14.9%)▲사회적편견(8.2%)등이 꼽혔다.
강박관념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각종 병을 앓는 데다 재수생이라는 처지 때문에 꼭 필요한 돈도 부모에게 요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5월부터는 무더위가 시작돼 땀이 많이 나는 등 체력소모가 심한 시기인 만큼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는 학교 건강 관리소 서 소장의 지적이다.
『수면과 영양섭취가 건강의 요체』라고 말한 서 소장은『각성제를 복용하는 등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 뇌의 기능도 저하돼 공부의 능률이 떨어지므로 하루 6시간 이상은 자야한다』고 충고했다.
그리고 휴식과 수면이 불안증·두통·위장병등 신경성 질환에 특효라고 말했다.<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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