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YS 8년, DJ 8년, 노무현 8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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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연초 중앙일보의 '선호하는 역대 대통령' 여론조사에 따르면 압도적 1위에 박정희 55.4%, 2위 김대중 17.1%였다. 그 뒤로는 전두환 3.1%, 이승만 2.2%, 김영삼 1.6%로 5%를 넘긴 대통령이 없었다. 상황이 이런데 누구를 위해 4년 연임제 개헌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또 잦은 선거로 인한 국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 4년 연임제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노 대통령도 같은 주장을 했다. 과연 그런지 따져 보자. 87년 개헌 이후 20년간 선거가 없었던 해는 8년에 불과했기에 "선거 때문에 세월 다 보낸다"는 비판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대선과 대선 사이에 총선과 지방선거마저 없었다면 나라가 더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까. 속된 말로 정권을 잡아 자기네들끼리 다해먹어도 국민은 견제 수단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책임정치 구현'이란 주장도 그렇다. 이는 5년 단임제를 몇 번 해보니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않기 때문에 국정수행을 무책임하게 했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태우.YS.DJ.노무현 등 4명의 대통령의 실패가 과연 5년 단임제 탓이었던가. 부패와 무능, 독선과 오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은 아니었던가. 오히려 4년 연임제였다면 첫 임기에서는 재선을 노려 선심정책과 선동정치를 일삼고, 두 번째 임기에선 현행 단임제의 폐해를 되풀이했을 것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단임이어서 지자체장으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취임하면서부터 "4년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절의 업적을 바탕으로 당당히 대선주자 대열에 뛰어들 수 있었다. 사람 나름이고 하기 나름이다.

못마땅한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떨어뜨리면 된다고? 미국에서조차 48년 이래 재선에 출마한 대통령이 낙선한 경우는 지미 카터와 조지 H 부시 두 사람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재집권 수단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하다. 지지율 10%의 대통령이 '헌법에 주어진 권한'만으로도 온 나라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그게 안타깝게도 2007년 1월 한국의 현주소다.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이 앞다퉈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고 배운 게 없는 자들이 청와대에서 국정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가능성이 상존하는 사회에서는 4년 연임은 악몽의 시나리오다. 대선 주자에 줄서기 바쁜 한국 정치의 수준으로는 4년 연임 대통령제는 시기상조다.

참고 기다리자. 우리 사회의 총체적 역량이 4년 연임제를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질 때까지. "나라를 위해 더 일해 달라"며 붙잡고 싶은, 퇴임 후에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그런 대통령이 두 명, 세 명 나올 때까지. 그것이 20년, 30년 뒤면 또 어떤가. 그때가 되면 국민이 앞장서서 기꺼이 연임제 개헌을 하자고 할 것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