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표상·투기꾼·포주 … 그들이 뭐가 어때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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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원제 Defending the Undefendable

월터 블록 지음, 이선희 옮김

지상사, 312쪽, 1만7000원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버는 복부인, 철마다 전세값을 올려받는 악덕 집주인, 서민들에게 무자비한 이자를 뜯어내는 고리대금업자…. 요즘 우리 사회에서 '공공의 적'으로 찍힌 사람들이다. 정부는 이들이 건전한 경제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비난한다. 또 그들의 분탕질을 막기 위해 연신 고강도 부동산 대책이며, 이자제한 조치 등을 만들어낸다. 선거철에는 더 난리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무엇 하나 제대로 먹힌 적이 있나. 막강한 행정력을 지닌 정부가 나서도 안되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은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해준다. 바로 시장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미국 경제학자가 쓴 책이지만 우리의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은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을 개인 간의 자발적 계약에서 찾는다. 이를 바탕으로 한 모든 거래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경제현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일관된 주장이다. 폭력으로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불법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 그렇다는 얘기다.

이는 타인에게 불법행위만 저지르지 않으면 투기꾼.고리대금업자.암표상.포주 등도 정당한 경제주체가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시장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일조를 하는 사람들이지 결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한다. 암적 존재로 비난받는 고리대금업자를 보자. 고리를 받는데다 대출금을 갚지 않는다며 채무자를 못살게 구는 데 대해 비난여론이 높다. 하지만 채권자가 돈을 떼먹힐 위험이 높은 채무자에게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건 당연한 경제원리다. 법으로 이자를 제한한다면 더 높은 이자를 물고서라도 돈을 빌리려는 가난한 서민들이 당장 더 큰 피해를 보는 법이다.

투기꾼도 마찬가지다. 쌀 때 사들여 비쌀 때 팔아 거액을 벌어들이는 건 불법이 아니라 훌륭한 사업수완이다. 이들은 쌀 때 왕창 사들이므로 가격이 더 떨어지지 않게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다, 공급이 부족할 때 차익매물을 내놓으므로 수급이 균형점에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지은이는 이런 식으로 포주를 옹호하기도 한다. 증권이나 보험 중개인과 마찬가지로 포주도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중개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금융 중개업자는 법적 보호를 받으며 편하게 일하지만 포주는 멸시를 받아가며 폭력적 근무 환경 속에서 일한다고 변호한다.

지은이는 이런 설명 속에서 "정부의 제한이나 규제는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안겨준다"고 강조한다.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야경국가론에 가깝다. 지은이는 또 '그럴듯한 도덕주의'를 완전히 발가벗겨 웃음거리로 만든다. 반시장주의자들에겐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조소를 던진다. 반론을 제시하는 수준이 아니라 '너는 틀렸으니 입 다물고 있으라'는 식이다. 지은이의 이런 주장들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 별거 아니다. 모두 시장경제의 손바닥 위에서 노는 거다, 이 밥통들아!"

이 정도면 이 책을 '하드 코어'시장주의론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경제학자 하이예크도 이 책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할 정도다.

미국에서 1976년 출간된 이 책은 91년 재판이 나온 데 이어 30년 넘게 인기를 끈 롱셀러다. 부동산 투기를 단번에 잡겠다는 사명감에 넘쳐 설쳐대는 우리의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읽고 눈을 번쩍 뜨면 좋겠지만, 맘에 안든다고 집어던져도 나름대로 효과는 있을 듯하다.

다만 번역이 군데군데 어색하고, 편집이 다소 엉성한 것을 보면 제작을 서둘렀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컨대 '학문의 자유를 부정하는 자'를 '디나이너 오브 아카데믹 프리덤'이라고 한글로, 그것도 잘못(디나이어가 맞다) 쓴 것은 그야말로 독자의 수준을 부정하는 편집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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