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선 수습책 왜 못내나/이수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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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사태수습이 아니라 악화쪽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 같다.』
시국수습책을 논의한 15일의 민자당 당무회의는 그러한 공동의 인식하에 노재봉 내각의 총사퇴를 포함한 국정쇄신책의 조기단행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이 시점에서 밀리면 노대통령의 통치력은 끝장난다』는 권력핵심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받아 되뇌던 민정계마저 노총리의 자진사퇴를 강하게 외쳤다.
강경대군 치사사건이 난지 근 20일동안 숨을 죽이며 청와대의 눈치만 보던 민정계로서는 대단한 용기(?)라 아니할 수 없어 오히려 민망한 감마저 들게한다.
노내각퇴진불가·강경대응만을 시국대책의 능사로 밀어붙였던 민자당이 뒤늦게나마 노내각퇴진의 여론에 동조하는 것을 보면서 몇가지 의문점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민자당측은 정부가 강군치사이후 시국대처에 강성으로만 밀어붙일때 민심의 흐름을 몰랐다는 말인가. 몰랐다면 정치할 자격이 없는 집단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당의 한 주요기능은 여론의 동향을 포착,이것을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고서도 안했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집권정당이 국가적 혼란을 수수방관,그들 말대로 사태를 오히려 악화하는 쪽으로 몰고가는 정부를 두둔한 것은 눈치보기에 급급했다는 말밖에 안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집권당의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총집결한 당무회의에서 내놓은 수습책이 고작 노내각퇴진을 빼면 말장난에 불과한 국정쇄신의 단안을 내리라는 촉구밖에 할 수 없느냐는 점이다.
이 난국을 풀겠다면 국정쇄신책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지,시정의 누구도 말할 수 있는 수사나 나열하는데 그친데서야 되겠는가. 대세가 내각 퇴진쪽으로 흐르니 우루루 그쪽으로 밀려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책임의식도,진지성도,역사의식도 없어 보였다.
그러니까 국회의석 3분의 2 이상을 점한 거대 여당의 국민 지지율이 10%를 밑돌게 되는 것이다. 민자당이 눈치보지 않고 당당히 수습의 구체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정치력이란 것도 한낱 빈말에 불과하게 되고말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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