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치닫는 현대차 … 협력업체 공장장 김창호씨의 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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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맛입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현대자동차 노사 간의 나쁜 관행이 고쳐진다면 당장의 고통은 견딜 수 있습니다."

현대차 노조가 서울 양재동 본사로 성과금 차등 지급에 항의하는 상경투쟁을 떠난 10일 오후 울산시 효문공단에 있는 현대차 협력업체 조일공업 김창호(48.사진) 공장장은 "고질적인 노조 파업으로 겪는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너무 크다"며 한숨지었다.

그는 "지난해에도 파업으로 인해 손실이 컸는데 연초부터 노사 갈등의 파급이 우리(협력업체)에게로 튀고 있다"며 난감해했다.

서울 본사 상경투쟁에 나선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회사 진입을 막는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강판으로 자동차의 시트.문짝 부품을 생산해 전량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는 이 회사는 현대차 노조가 성과금 50%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잔업.특근 거부를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벌써 생산량을 40%나 줄이는 바람에 3억여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했다.

현대차 노조가 예고했던 대로 부분파업에 들어가면 공장 가동을 50% 이하로, 전면파업이면 곧바로 공장문을 닫아야 한다.

김 공장장은 "요즈음 친구.친척들을 만나면 '노조 때문에 현대차 안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그래도 현대차 때문에 먹고사는 처지여서 겁이 덜컥 난다"고 했다.

서울 본사 상경투쟁에 나선 현대자동차 노조원들이 10일 오후 서울 양재동 본사 앞에서 회사 진입을 막는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이은정 인턴기자]

그는 "그래도 회사 측이 이번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고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노조 측에 묻겠다고 하니 뭔가 달라질 것 같다는 기대가 있어 좋다"고 했다.

실제로 "이번에는 원칙을 세우겠다"는 회사의 입장이 워낙 강해 상당수의 현대차 노조간부들조차 "파업을 하더라도 회사로부터 성과금을 받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다.

김 공장장은 그러나 "결과는 예측불허"라며 불안해했다. 그는"과거에도 회사가 생산라인 가동 중단의 피해를 각오하고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맞선 예가 있었지만 얼마 안 가서 정부의 개입으로 물러섰다"며 "결국 사태는 어설프게 봉합되고 우리 같은 협력업체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의 피해만 거듭 봤다"고 했다.

그는 1998년 외환위기 때 노조의 36일간 파업으로 울산공장 전체가 전쟁터가 되는 상황을 무릅쓰고 회사가 구조조정에 나섰다가 정부.여당이 개입하면서 9600여억원의 생산손실만 입은 채 물러선 것을 사례로 들었다.

김 공장장은 "도요타 등 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글로벌 전략이다 뭐다 해서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현대차는 노사 갈등에 발목이 잡혀 아무리 혁신을 하려고 노력해도 물거품이 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번 갈등이 잘 해결돼 새로운 노사관계가 정립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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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기원 기자

◆조일공업주식회사=울산시 북구 효문공단에 있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업체. 1979년 창립 이래 줄곧 강판으로 자동차 시트.문짝 부품을 만들어 100% 전량을 현대차에 납품하고 있다. 종업원은 95명이며 지난해 매출액은 216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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