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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대한 쌀 개방 압력 어리석다"|헤럴드 트리뷴지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국의 쌀 수입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등 미국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내셔널 헤럴드트리뷴지는 이 같은 미국의 대한압력강화는 한국민의 전통적 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신문의 리처드 크리치필드 기자는 최근 한국의 농촌을 돌아보고 한미간의 쌀을 둘러싼 무역마찰에 대해 한국의 쌀 문화를 중심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음은 크리치필드 기자의 기사내용이다.【편집자주】
『미국사람들은 왜 쌀을 두고 그 야단인가요.』
쌀 수입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미국에 대해 한국의 농부들은 분노했다.
이들은 대부분 1만평도 안 되는 땅을 조상 대대로 물려 받아가며 기원전 10세기께 부터 주로 쌀 농사에 종사해왔다. 땅이 적은 만큼 비료와 품종개량에 대한 투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정부는 국제시세의 5배로 이 쌀을 수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관리들은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쌀 수입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이유가 자유무역의 이념을 확인하자는 것이지 캘리포니아주나 텍사스주의 쌀을 보다 많이 수출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담배와 할리우드의 성폭력영화 및 비디오시장을 개방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아시아인의 일치된 저항을 불러 일으켜왔다.
사실 한국인은 누구 못지 않게 자유무역의 강점을 잘 알고 있는 국민이다. 한국인들은 무역장벽이 낮아진 지난 4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하며 부를 축적했다 지난 64년이래 한국은 1인당 GNP가 5백 달러에서 5천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한국의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이로 인해 아버지들보다 평균 12㎝나 크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며 양국의 연간 교역량은 올해 3백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쌀은 동아시아 농촌문화의 기본, 즉 가족·재산·노동·종교·도덕에 대한 관념의 기본이다. 역사학자 맥닐은 『도시문화의 근본으로서 농촌을 대신할만한 것은 아직 없다』 고도 말했다.
아시아 각국 정부는 그들의 쌀 재배 농부들에게 상당액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들의 사회가 잘살고 못사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농부로 묶어두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들을 제외한다면 한국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농촌에서 도시로, 농장에서 공장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
50년대 한국의 농촌은 백년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난했다. 그러나 자갈밭·과수원·푸른 산·소나무 숲 등으로 그것은 조화로운 세계였다. 거의 80%의 한국인은 이렇게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은 한국인구중 15%만이 농촌에 남아있다. 옛 농촌의 고요함은 사라졌다.
85년에서 90년까지 농촌의 가계수입은 평균 8천 달러에서 1만5천 달러가 됐다. 85년 농촌가정의 절반은 냉장고와 전화를 갖게됐으며 25%는 컬러텔레비전까지 보유했다. 그러나 90년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농가가 이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다. 게다가 가스난로·트랙터, 심지어 자동차를 소유한 농가도 늘고 있다. 가처분소득은 79년에서 88년 사이에 4배가 됐다. 『이제 40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도시인구의 85%이상은 옛 농촌 마을의 가치체계들을 그대로 간직한 농촌출신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1년에 서너번씩 선산에 참배하기 위해 찾아가는 농촌마을과의 유대를 갖고 있다. 한국의 한 인류학자의 말이다. 『효는 백행의 근본이다』는 격언에서 보더라도 유교사상은 아직도 한국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에는 지금 서양문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돈버는 일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며 이혼율과 범죄율도 늘고 있다.
연세학당 창시자의 손자인 호레이스 언더우드씨는 『한국인들이 세계적이고 싶어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자기자신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무역시장에서 쌀 거래량은 아주 미미한 형편이다. 미국의 쌀 수출은 연간 2백40만t에 지나지 않는다. 유교적인 동아시아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그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는 때 쌀을 무역의 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은 엄청나게 바보 같은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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