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사찰 허용을 바라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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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북한관계 보도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이 국제 핵사찰 수용을 거부한 채 현재의 핵시설 건설을 계속한다면 95년께는 핵무기용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하고 1∼2년 후엔 핵무기보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엄청난 현실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손쉬운 대응책이 없다고 답답해하면서 갑론을박만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의 핵사찰 거부가 한민족에게 어떤 위험을 가져다줄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나라 국가정책 결정에는 두가지 대전제가 있다.
첫째는 국가안보에는 결코 어떠한 허점이라도 허용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며, 둘째는 북한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적국이면서 동시에 동포사회라는 양면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전제에 서로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는데 있다.
먼저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미군을 믿고 북한의 핵 개발을 방치하는 것은 첫 번째 전제에 어긋나 안보에 허점을 만들 수 있다.
엔테베식 작전을 감행하는 것도 잘못하면「상호파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75년이래 핵무기 비확산 조약(NPT)가입 국으로서 모든 핵 시설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왔다.
따라서 핵무기 보유를 시도할 경우 오히려 평화적인 에너지용 핵개발마저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이 만일 핵무기 개발에 성공, 미소처럼 핵공격을 받았을 경우 보복을 해 상대방을 멸망시킨다는 「상호확실파괴」(MAD)시스팀을 도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이론은 보복력 행사위협이 선제공격을 막아준다는 이성적 논리에 기초해있다.
그러나 핵무기 자체 보유에 기초한 이 같은 시스팀은 비이성적 요소에 매우 취약하다.
이 시스팀 아래서는 핵보복을 배제키 위해 보복을 명령할 최고지도자를 겨냥해 선제공격이 감행될 수 있다. 이같은 선제공격에 대비키 위해서는 일선 지휘관에게 핵무기 발사권을 허용해야하며 이 경우 과대망상증이나 영웅심리를 가진 일선 지휘관에 의해 핵미사일이 발사될 수도 있는 것이다.
1메가t급 하나면 2차대전기간동안 연합국이 유럽에서 사용한 총화력의 절반수준이다.
미국의 트라이던트 핵 잠수함 한 척이 보유한 다탄두(MIRV)미사일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10배 위력을 가진 핵탄두로 2백개 도시를 동시에 공격, 초토화시킬 수 있다.
1메가t 핵탄이 서울 중심지에 떨어지면 1백60만명이 즉사하고 3백50만명이 부상하며 외곽지대까지 불바다로 만든다.
이외에 낙진·방사능 오염으로 생태계 마비는 돌이킬 수 없게된다.
이처럼 북한이 우리의 정책 결정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어느 것 하나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북한에 결정적 우위를 가져다줄 핵개발을 좌시할수도, 엔테베식 특공 작전으로 이스라엘의 흉내를 낼 수도, 동족간의 핵대결을 결행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북한이 순리대로 핵사찰을 받아들여 서로의 파멸을 막고 남북이 보란 듯이 평화용 핵에너지를 개발하는 방향에서 실마리를 푸는 방법밖에는 없다.
김태우<한국 국방 연구원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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