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교육」이 부정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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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예능계 대학 입시 부정의 근원은 전문가 양성 교육을 표방하면서도 전문 교육을 해오지 못한 대학 교육의 후진성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대학 교육부터 체계화해야 한다는 전공 교수들의 분석이 나왔다.
대학 입시 부정 사건으로 국내 최고 대학의 명예에 상처받은 서울대학교가 문제의 발본색원을 위해 전공 교수들에게 맡긴 제도 개선 방안 연구 결과가 일단락돼 3일 호암 생활관에서 발표 세미나를 가졌다.
주제 발표를 맡은 교수들은 각자 개인적인 입장에서 개선 방안을 발표했는데, 각자 조금씩 다른 입장이지만 한결같이 교육 체계의 전문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함을 지적했다. 다음은 발표 요지.
◇대학에서의 예술 교육·예술 이론 교육의 강화와 관련해 (김문환·미학과 교수)=대학의 예술 교육은 실기 교육 외에 이론 교육과 비전공 학생을 위한 교양 교육의 세가지 차원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나라 대학들은 유독 실기 교육만 독점적으로 시행하는 파행을 보이고 있으며, 그나마 교육 목표가 분명하지 못해 부진을 면치 못했다.
세가지 차원의 고른 교육이 문화·예술 발전의 바른 길이 될 수 있으며, 특히 이의 기초가 되는 이론 교육은 인문과학적 접근 방식에 기초해야한다. 이를 위해 단과대학별로 분산, 단절돼 있는 예술 관련 학문을 통합, 체계적 상호 보완을 이룰 수 있는 「예술학 대학」 설립을 주장한다.
◇대학 음악 교육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이강숙·음대 작곡과 교수)=입시 부정 사건은 음악 교육 제도의 근본적 개선책을 재촉하고 있다.
현재의 음악 교육 현실은 전문 연주가를 위해서도, 이론적 연구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음악원 설립 주장은 전문 연주가 양성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연주가 못지 않게 청소년 음악 교육을 맡을 교사와 음악 행정가·연출가·지휘자도 필요하다. 서양 대학에서 중시한 음악의 출발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연주」가 아니라 소리를 이해하고 즐기는「이론」 「교양」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전문적 연주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음악을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이론·교양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전문 연주가 양성을 위한 「음악원」도 필요하다. 전문 교육과 교양 교육이 함께 실시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한다.
◇음악 실기 교육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김형배·음대 기악과 교수)=음악 중 실기 부문은 자체의 특수성을 무시당한 채 획일적 교육 체계 속에 묻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음악가가 되고 싶은 학생들이 충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전문 연주가를 위한 실기 교육은 보다 전문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시에서의 학과 성적비중을 대폭 줄여야 한다. 조기 교육이 필수적인 연주가 양성 과정에서 부수적인 학력 평가로 진로가 좌절돼선 안된다.
물론 음악 이론 연구 지망생들에게는 실기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미술계 교육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 (김병종 동양화과 교수)=현행 미술 교육 역시 미술가 양성이라는 실기 중심임에도 실기 능력 있는 학생을 뽑지 못하고 있다.
또 미술 교육·미술 행정 등 분야의 인재 양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술에서 실기 전문 교육을 위한 「미술원」 설립은 시급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기능 교육보다 문화적·인문적 시야와 폭넓은 감성을 같이 기를 수 있는 대학의 종합 교육이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현행 입시 제도의 공동 관리제가 폐지돼야 하며 시험 과목을 다양화해야 한다. 입시의 천편일률적인 석고 소묘 시험은 예술가의 생명인 창의력·개성을 무시하고 단순한 기능인만을 뽑자는 부조리한 관행의 대표다. 입학 후 교육에서도 실기와 강의는 병행해야 하며 나아가 음악·무용·철학 등과의 연계 교육이 있어야 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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