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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혼례식을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지난 일요일에 친지들의 자녀 결혼 청첩장을 여러 장 받아 어쩔 수 없이 남편과 나는 양쪽으로 나눠 가야 했다. 당신은 어느 곳 어느 곳을 맡고, 나는 어디어디를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 부부는 아침에 서로 헤어 지려고 했다.
며칠 전만 해도 지각 꽃샘추위에 몸을 움츠렸는데 그 날은 샘이 나도록 화창한 날이어서『우리 함께 나들이 나가요』『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좋다면 그렇게 합시다』며 우리 부부는 실없는 소리를 나누었다.
결국 우리에게도 머지않아 닥칠 일로 결코 남의 일이라 모른 체 할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고 예식장 행 버스를 타려는데 마침 농협 앞마당에서 거행되고 있는 전통 민속 혼례식이 관심을 끌어 나도 모르게 남편 따라 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침에 남편에게 농협 운동장 혼례식은 가까운 곳이니 내가 가겠다니까 막무가내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많은 축하객이 붐비는 가운데 혼례식을 올리는 신랑·신부는 명문대 출신으로 이 지역을 빛낼 인물들이어서 기대와 관심이 컸다.
신부의 대학 후배들로 구성된 사물놀이 팀이 한마당 잔치를 가미한 전통 민속 혼례는 꽹과리를 선두 주자로 장구·북·징을 치며 해학과 풍자로 창을 혼합해 판에 박은 주례사 대신 『얼씨구 좋은날』해가며 한쌍 원앙의 새 출발을 축원하며 덕담으로 사면 팔방에 부정을 쫓고 행운을 빌었다.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빗대어 살풀이하는 대목에선 모두들 폭소를 터뜨렸다.
『신랑 듭시오.』나지막하게 친 차양 아래 초례상엔 이미 양가 안사돈이 촛불을 밝혔고 깔아 놓은 멍석에 사모관대를 쓴 신랑이 초례상을 향해 큰절을 올리니『신부 납시오.』활옷에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은 신부가 하님의 부축을 받으며 큰절을 올린다.
흥미진진해서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젊은 층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민속 혼례를, 중년층은 아스라이 되살아나는 추억을 생각하며 감회가 깊은 것 같았다.
일요일마다 북새통을 이루는 예식장의 바가지 상혼에 파김치가 되고 여러 조건을 수락해야 겨우 빌릴 수 있는 예식장 횡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넓은 공간이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많지 않은가.
망국병인 과소비를 추방하는 의미에서도, 서구 문화에 밀려 겨우 명맥만 이어온 민속 혼례를 복원시키는 차원에서도 전통 혼례식은 바람직한 것 같다. 이정자 <경남 함안군 군북면 중암리 139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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