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우리 문화재 찾으려 50년간 프랑스 도서관 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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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병선 박사가 『한국의 인쇄』 등 자신이 쓴 책들을 껴안고 포즈를 취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이 책들이 내 자식”이라고 말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인들이 약탈해 간 문화재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 지 아직도 몰라. 자네가 사학을 공부했으니 그걸 찾아보기 바라네."

1955년 8월 초, 서울대 사학과 교수인 이병도 박사는 프랑스 유학을 떠나기 전 인사차 찾아온 한 여성 사학도에게 이 같은 당부를 했다. 그 여성은 서울대 사범대 졸업생(역사 전공)으로 대학 재학 중 이 박사의 강의를 몇차례 청강한 제자였다.

그는 스승의 바람이자 자신의 꿈이기도 한 그 일을 이루리라 다짐하고 한국을 떠났다. 프랑스 파리에서 병인양요 때 약탈 당한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낸 박병선(78) 박사다. 외규장각은 조선시대 강화에 지은 궁궐 안 서고이며, 의궤는 왕실의 장례.궁궐 신축 등 큰 행사의 절차와 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한 책이다.

그는 55년 8월 11일, 김포비행장에서 군용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에어 프랑스로 갈아 타고 사이공.베이루트 등을 거쳐 출발한 지 닷새 만에 파리 외곽 오를리 공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도착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프랑스 말부터 배워 학사.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을 밟던 67년, 그는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측에서 책을 자주 빌리러 오는 동양 여학생에 주목, 그의 석사 논문에 관심을 가지면서 도서관에서 일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일주일에 15시간 일하는 임시직으로 월급도 얼마 안됐지만 개의치 않았다.

박 박사는 "도서관에서 일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그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BNF에서 일하며 직지심체요절(1377년 인쇄된 금속활자본으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름)이 금속활자본임을 고증하는 작업을 시작해 72년에 결실을 맺었다. 그 과정에서 두 개의 박사 학위도 따냈다. 71년 '역사를 통해 본 한국 민속학'으로 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듬해 민속사에 관한 논문으로 두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하고 임시직 신분으로 BNF에서 일을 계속했다. 당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서라고 말했다.

그는 78년,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 도서 192권을 찾아냈다. 스승의 당부와 자신에게 한 약속을 이룬 것이다. 5일 그는 이 공로를 인정 받아 주불 한국대사관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았다. 1999년 은관훈장을 받은 데 이어 두번째다.

젊었을 때 세웠던 꿈은 이뤘지만 박사는 요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외교 문서와 자료를 찾아 정리하는 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매달린 이 일 때문에 지출이 늘어 요즘엔 한 달에 100유로(약 12만원)로 살 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나처럼 병약한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런데 이렇게 오래동안 살고 있잖아요. 집념을 가지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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