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 청년 컴퓨터 책이 몽골서 베스트셀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도 이제 세계 최강 정보기술(IT) 파워를 앞세워 이를 실천할 때다. 중앙일보가 21세기 어젠다를 '해외에 IT 청년단 1만 명을 파견하자'로 선정한 이유다. 정부 기관을 통해 나간 해외 봉사단의 사례에서 IT 청년단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말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300㎞ 떨어진 항구도시 포트사이드. 이곳에서 만난 김선(26.여)씨는 대한민국의 'IT 전도사'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2년 기한으로 이곳에 온 김씨는 현지 청소년들에게 컴퓨터 기초를 가르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컴퓨터를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한 아이가 수두룩하다"며 "교육기간이 8주인데 문서 작성과 영화.음악의 다운.업로드 등을 배우고 나면 더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이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얻어 가고 있다. 이 도시 청소년 센터의 아딜 알리 우마루(51) 소장은 "김선씨는 참 예의 바르고 성실한 천사다. 며느리로 삼고 싶다"며 웃었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 옆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난 유성주(30)씨. KOICA 소속인 유씨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정부청사 4층 복도 끝에 5평 남짓 마련된 IT 교육센터에서 공무원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친다. 밀려드는 공무원들의 도움 요청과 질문을 처리해 주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서울대(전기공학부) 4학년 1학기 때 휴학하고 2005년 9월 이 나라 지방도시 만수라에 온 진민규(25)씨도 이곳 직업훈련센터의 컴퓨터 실습실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그는 "운 좋게 병역특례를 받는 요원으로 이곳에 왔다"며 "솔직히 문화가 낯설고 혼자 온갖 일을 감당해야 해 군대 못지않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집트 주재 정우용 KOICA 사무소장은 "한국 IT가 강하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도 알아 '봉사단을 더 보내 달라'는 공무원들 요구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칭기즈칸 유목민의 후예가 사는 몽골에서도 한국의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는 후한 점수를 받는다.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230㎞ 떨어진 다르항시의 한 국립기술대에서 한국인 여선생 전상미(28)씨의 인기는 '짱'이다. 이 대학 3년생 아츠자르갈(20)은 "선생님한테 데이터베이스(DB)가 뭔지 처음 깨쳤다"며 "실력을 키워 졸업 후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몽골에 파견된 한국 IT 요원들이 우리 정부에서 받는 월급은 350달러(약 33만원) 정도지만 표정은 밝아 보였다. 전씨는 "내가 진정 남을 돕는 데 적성이 맞는지 스스로를 실험 중"이라고 말했다.

몽골에서 컴퓨터를 배우는 학생 10명 중 9명은 황석학(33)씨가 펴낸 컴퓨터 서적을 본다. 포토샵.엑셀.CAD 등 몽골어로 쓰인 총 7권의 컴퓨터 학습 시리즈다. 그는 몽골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려고 교재를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22일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그는 "3년 전 이 나라에 와 컴퓨터 교육을 하다 답답해 아예 책을 썼다"고 말했다. 영어 해독에 익숙지 않은 이곳 학생들을 위해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몽골어로 쓴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이 나라 컴퓨터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길지는 않지만 방학을 이용해 봉사 활동에 나선 대학생도 많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에 재학 중인 박보영(24)씨는 지난해 여름방학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의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에 뽑혀 러시아의 오지인 시베리아 야쿠츠크에 다녀왔다. 초.중 등학교에서 홈페이지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반응이 좋아 같은 학교 초청으로 지난달 중순 다시 현지를 찾았는데 8개월 정도 머물 계획이다. 지난해 여름 말레이시아 UKM 대학에서 봉사 활동을 한 이화여대 대학원생 황선영(26)씨는 "한류 스타만 알던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IT 를 알려 흐뭇했다"고 회고했다.

문제는 귀국 후다. 해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봉사단원들에겐 대부분 답답한 현실이 기다린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의 수리가오 주립대에서 2년간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쓰는 기술 등을 가르치고 지난해 8월 귀국한 이종훈(31)씨. 2년6개월 다닌 네트워크 회사를 그만두고 봉사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귀국 후 50번 넘게 취업 이력서를 쓰고 일곱 차례 면접을 봤지만 허사였다. 가장 큰 어려움은 2년간의 필리핀 봉사 활동 경험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점이다. 신입사원으로 취직하려 해도 나이 제한에 걸렸다. 더욱 억울한 건 해외 활동을 곱지 않게 보는 일부 시각이다. 그는 "채용 면접 때 '홀어머니를 두고 왜 필리핀까지 봉사 활동을 갔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래픽 크게보기

특별취재팀=홍승일(팀장)·이원호·김원배(경제부문), 최원기(국제부문), 김민석·이가영(정치부문)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 베이징=유광종, 카이로=서정민, 워싱턴=강찬호,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