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 깜짝쇼”… 두손 든 강경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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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 공산당 중앙위와 고르비의 앞날/옐친과의 연합으로 위기극복/당내 지지 확고… 연립정부 가능성 커져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5일 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강경파들이 만약 자신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동의할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당서기장직을 사임하겠다고 감정적으로 맞섰고 이에 대해 회의는 그의 사임을 거부했다.
결국 24,25일 양일간 열린 이번 당지도부 회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또 한번의 「깜짝쇼」로 막을 내렸다. 고르바초프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다짐했던 강경보수파는 목소리만 요란했을 뿐 고르바초프의 페이스에 말려 그의 협박에 끌려다닌 무기력하고 조직화되지 않은 모습만 드러냈다.
당초 고르바초프의 해임을 겨냥했던 보수강경파는 그 반대로 고르바초프에게 계속 서기장직에 남아있어 달라고 간청하는 꼴이 된 셈이다.
이와 같은 극적인 상황변화는 고르바초프의 노련한 정치술과 보수강경파의 득세가 결코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하지 않다는 옐친의 타협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현실적인 연합작전을 통해 당면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했다고는 할 수 있으나 여전히 파업상태에 있는 백러시아등 지방공화국의 움직임과 광원파업의 진전상황에 따라서는 또다른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3일 옐친등 9개 공화국 지도자와 정치적인 연합을 이룩한 후 24일부터 공산당내 보수강경파를 몰아붙이는 한편,서기장직과 대통령직 겸직 필요성을 강조한 고르바초프가 25일 전격적으로 서기장 사임의사를 발표한 것은 다분히 향후 정국의 운용방안을 염두에 둔 계산된 작전으로 보인다.
즉 중앙위 총회 개막직전에 이미 분석됐듯이 고르바초프는 현재의 위기타개는 분리파공화국의 민족주의 세력 및 러시아공화국 등 민주 야당세력과의 「권력공유」나 「원탁협상」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깨닫고 있다.
따라서 서기장직 사임을 스스로 발표하고 고르바초프를 대신할 대중적 정치지도자를 확보하고 있지못한 당이 당정치국 비상회의와 당중앙위원회 전체회의의 결의를 통해 이를 거부케 함으로써 연립정부 구성으로의 행보를 가볍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미 24일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 고르바초프는 당중앙위내에서는 어떤 도전세력도 이겨낼 수 있는 지지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그는 23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정국안정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동의를 받아냈다. 이로써 두 사람은 연정이나 원탁회의를 구성할 원칙에 어느정도의 합의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국운용은 위기타개책을 중심으로 각 지방공화국과 협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갈 것으로 보인다.
24일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우리는 연방정부에 각 공화국 및 정치단체들의 대표들을 포함시킬 준비가 되어있으며 소련의 전반적인 상황에 유효한 것이 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20일부터 모스크바에서 전 정치국원 예고르 리가초프,전 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부의장 루슬란 하스블라토프,안보위원회의 바딤 바카틴 위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고 있는 위기타개를 위한 범정파원로 원탁회의의 결과도 상당한 시사점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당중앙위 총회과정을 통해 고르바초프의 정치술이 여전히 주효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도 소련정국의 안정을 위해 보수·진보 양파 모두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즉 인민의 지지를 확보하고는 있으나 군·당관료 등 제도적 권력기관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급진개혁세력과 반대로 제도적 권력을 확보하고 있으면서 인민의 지지와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공산당 모두에게 파국을 초래할 격렬한 물리적 대결을 회피할 유일한 지도자는 여전히 아직까지는 고르바초프뿐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위상은 당분간 사회적 소요와 경제난에 의해 흔들릴지라도 정치적으로는 안전할 것으로 분석된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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