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만 쏟아 붓는 농촌대책은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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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농업인의 날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농업부문에 향후 10년간 1백19조원을 지원할 뜻을 밝혔다. 농림부의 세부계획에 따르면 이 돈은 주로 농업의 체질 강화, 농가소득의 안정, 농촌 교육복지시설의 확충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중점을 두었던 생산기반 정비 등 인프라 투자는 축소해 간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도하개발어젠다(DDA)의 진전에 따라 개방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농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이번 계획에서 보여준 의욕과 정책 방향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돈과 계획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보장된다는 법은 없다. 지난 11년간 농업부문에 들어간 돈은 82조원에 달했지만 아직도 우리 농업은 낙후돼 있으며 농민들은 누적된 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영일이 없다.

자금이 지나치게 풍부해지자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까지 돈이 쏟아부어졌고 도덕적 해이가 난무하면서 생긴 결과다. 추곡수매가 결정에도 정치논리 때문에 정책이 우왕좌왕하다 보니 돈은 돈대로 들어갔지만 국민은 여전히 국제시세보다 3, 4배 비싼 값으로 쌀을 사먹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천에 있어서 경제논리를 무시한 농정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라는 교훈을 정책당국은 철저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1백19조원은 큰돈이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사업의 경제성을 엄격히 따져보고 차주의 신용도를 철저하게 심사한 다음 투자와 융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뿐만 아니라 비농업 민간부문도 농업의 발전과 농촌환경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정부 쪽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농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준다면 민간자금이 자연스럽게 농촌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정부 돈은 절약되면서 국토는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고 농촌의 회복과 농가소득의 향상이 가속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