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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붕괴 14주년] 下. "40년 분단의 이념격차 몇 세대 지나야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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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독일 통일의 실무작업을 총괄했던 사민당(SPD)의 에곤 바르 전 연방장관과 기독민주연합(CDU)의 볼프강 쇼이블레 원내부의장을 만났다. 바르 전 장관은 햇볕정책의 원조격인 동방정책의 설계자로 동독과의 막후 접촉을 맡았고 쇼이블레 원내부의장은 당시 내무장관으로 통독협상 실무 책임자였다. 각각 이뤄진 두 인터뷰를 하나로 묶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 밤의 상황은.

▶바르=뉴스를 듣고 장벽 붕괴 소식을 알았다. 충격적이었다. 몇분 후 전화가 울렸다. 빌리 브란트 전 총리였다. '(사태를)예상했느냐'고 묻는 그에게 '전혀 뜻밖이다'고 대답했다.

▶쇼이블레=당시 매주 5만명씩 밀려오는 동독 난민 문제를 협의하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총리실에 있었다. 헬무트 콜 당시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 중이라 공석이었다. 회의 도중 동독 정부의 국경 개방 소식이 전해졌다. 너무 놀랐다.

-당시 동독지역의 치안과 시위상황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바르=동독은 정권수립 이후 처음으로 자국 국민의 장벽 통과와 해외여행 문제를 소련의 허락 없이 자주적으로 결정했다. 장벽으로 정권을 유지하던 동독 정권으로선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동독 정권은 당시 내부 붕괴로 군을 투입할 여유조차 없었다. 설사 시위 진압을 명령했어도 군이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쇼이블레=당시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동독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사태에 소련군을 투입해 무력 진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민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자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소련의 지원을 받지 않고선 체제 유지가 힘들었던 동독으로선 치명적인 선언인 셈이다. 그래서 유혈사태로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동구권의 맹주였던 동독이 어떻게 그리 쉽게 무너질 수 있었나.

▶바르=당시 동독 정권의 붕괴는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됐다. 89년 여름 프라하와 바르샤바의 서독대사관에는 동독의 난민들로 넘쳐났다. 서독은 이 문제를 논의할 회담을 제의했으나 동독은 최고통치자인 에리히 호네커 의장이 입원 중이라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왔다. 동독이 국가로서 제대로 기능을 못했다는 뜻이다.

-통일의 후유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쇼이블레=실업률이 여전히 높지만 옛 동독지역은 10여년 전보다 상황이 크게 나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동서 간 경제적 격차와 내적 갈등 등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옛 동독지역에 투자해 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바르=동서독 주민 간의 멘털리티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간과한 게 잘못이다. 당시 수백만명의 주민이 오갔고 TV를 통해 상대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어 상대방을 잘 안다고 믿었으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40년간의 분단의 결과로 생겨난 이념,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체제의 차이, 의식.생각.경험.느낌의 차이는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몇 세대가 지나가야 해결될 문제라고 본다.

-베를린 장벽의 역사에서 한국은 무엇을 배워야 하나.

▶쇼이블레=북한 주민과 가능한 한 접촉을 더 자주, 그리고 많이 하라는 것이다. 통일을 위해 인적교류는 필수적이다. 자유라는 가치를 심어주기만 하면 변화는 북한 주민들에 의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서두르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다. 북한은 장기적으로 볼 때 존재할 수 없는 나라다.

▶바르=한국은 북한을 항상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한다. 북한은 외톨이다.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4강이 모두 북한의 핵무장을 원치 않기에 한반도에서 핵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북한의 태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격앙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한국이 최근 송두율 교수 사태 등 이념적인 갈등으로 햇볕정책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서독은 빌리 브란트 총리의 개인비서가 동독의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동방정책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한국민은 단숨에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을 꾸기보다 10~20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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