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사형제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근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 집행, 연쇄 살인범 유영철씨의 사형 집행 여부 등으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국내에서 사형 집행은 1997년 12월 이후 9년 동안 유예돼 왔다. 집행 대기 중인 사형수는 63명. 국회에선 사형제 폐지 법안이 계류 중이고 시민단체 등의 폐지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선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양측 주장을 들어본다.

필요하다
사회질서 유지 최후의 수단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서 사형을 남용한 것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사형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깊이 자리 잡게 됐다. 더구나 몇몇 사건에선 사형이 확정되자마자 형을 집행해 재심 기회도 박탈했기 때문에 인권보장 차원에서 사형제 폐지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지난해는 국제 앰네스티가 우리나라를 사형제 폐지 우선 대상 국가로 선정하면서 핵심 이슈가 됐다. 국회에서는 세 번째로 사형제 폐지 법률안이 제출됐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형제 폐지를 권고했다. 또 여러 종교단체나 인권단체 역시 사형제 폐지를 주장했다. 현실적으로도 우리나라는 97년 말 사형 집행 이후 현재까지 사형 집행을 보류하고 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국민 여론은 사형제 존속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민의 60% 이상은 사형제가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살인 등 흉악범 증가, 특히 잔혹하고 인간 품성을 상실한 연쇄 살인범의 등장은 사형제 존속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형제가 존속한다고 해서 인간 생명을 찬탈하는 흉악범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는 이 시점에서 타인의 생명을 빼앗은 책임의 대가는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형제에 대해 국민의 동조 아래 국가에 의해 자행되는 제도적 살인행위라는 견해도 있다. 국가의 핵심 작용은 국민의 인권 보장이기 때문에 생명권 보장을 위해 살인범을 처벌하는 국가 행위도 제도적 살인행위로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흉악범으로부터 선량한 대다수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형제도는 결코 제도적 살인이 아니다. 반인륜적.반사회적 흉악범을 제거해 법적 정의를 실현하고 국가.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또 사형제도는 흉악범을 엄벌에 처함으로써 다른 범죄자들에게 경고하는 최소한의 심리적 효과가 있다. 피해자 측에는 극도의 고통과 원한을 상쇄시켜 개인적 보복이란 악순환을 막는 역할도 한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범죄자의 인권.생명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법이 타인의 생명을 해친 사람들의 생명까지 무조건 보호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존엄은 인격에 기초하고 있다. 타인의 생명을 존중할 때 자신의 생명도 존중받는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오히려 타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이자 법적 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이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오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사법제도가 완비돼 있는 현 상황에서 오판 논란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인간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는 이상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절대적 가치도 현실세계로 들어오면 상대화될 수밖에 없다. 사형제 존치는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형제는 결코 야만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를 지키기 위한 최후 수단이다. 다만 현행법에 산재되어 있는 사형 규정은 축소.정리돼야 한다. 사형제는 사회 구성원의 생명권 보장이란 헌법적 가치질서를 위해 불가피하고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유지돼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교수.법대


폐지하자
인권 미개국으로 남을 건가

사형제란 범죄인의 생명을 박탈해 사회로부터 영구히 제거하는 법정 형벌이다. 우리 형법이나 군형법은 내란.간첩죄.살인죄 등 19개 범죄에 대해 사형 조항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60여 명의 사형수가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사형제는 여러 이유로 시급히 폐지돼야 한다. 첫째 사형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에 대한 침해다. 사형제 존속론은 인간 생명에는 가치의 경중을 둘 수 없기 때문에 극악한 살인범처럼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생명에 대해선 생명권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생명권도 공익을 위해선 법률로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권리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1996년 11월 이런 취지의 결정을 내려 사형제에 면죄부를 부여한 바 있다. 그러나 사형제는 생명권에 대한 '합헌적 제한'이 아니라 '위헌적 침해'다. 우리 헌법은 제37조에서 국민 기본권도 필요 부득이한 경우 법률에 의해 제한될 수 있지만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사형은 사형수의 생명을 단절시키는 형벌이므로 생명권이라는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내용'의 침해다. 생명이야말로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박탈되고 난 뒤 다른 부수적 권리가 존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사형제는 정적 제거를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슬프게도 이것은 60년도 채 안 되는 헌정사를 통해 여러 번 반복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하의 진보당 조봉암 사형 사건, 유신 정권하의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사형 사건 등이 그 예다.

사형제는 오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치명적 결함도 가진다. 최근 친구의 죄를 뒤집어쓴 사형수가 8년이 흐른 뒤에야 진범인 친구의 고백으로 무죄 방면된 바 있다. 만약 집행이 연기됐던 8년 안에 사형됐다면 무고한 한목숨이 사형이란 원시적 사법 시스템에 의해 희생됐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형의 두려움에 의한 범죄 억제력이 곧잘 이야기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살인 피해자 등 '피해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사형제 존속의 필요성이 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 인권이란 가해자 생명을 단절시켰을 때 한풀이식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범죄 피해자 구조청구권처럼 각종 범죄로 피해를 본 이들의 정신적 충격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사회가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출 때 피해자 인권은 비로소 보장될 수 있다. 유영철씨에게 가족을 셋이나 잃은 한 피해자가 유씨를 양자로 삼고 유씨의 자식을 돌보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재작년 국회에 사형제 폐지 의견을 내면서 감형.가석방 없는 종신형으로 대체하거나 평시 폐지, 전시 적용의 절충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잠정적으로 이런 절충안을 시행하되 장기적으론 사형제 '단순 폐지'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이 적기다. 사형제 폐지의 결단은 훗날 대한민국이 인권 미개국에서 인권 선진국으로 도약했다는 바로미터로 평가될 것이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