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병영생활, 꼭 법으로 규제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국방부가 병사들 간의 상호관계를 법으로 규정하겠다고 나섰다. '병은 다른 병에게 어떤 명령이나 지시 등을 할 수 없고, 간섭할 수 없다'는 규정을 군인복무기본법에 포함한 것이다. 다만 지휘계통상 상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경우 등 예외 조항은 두었다. 하지만 기존의 병영생활에 획기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 자명해 매우 주목된다.

국방부가 이런 발상을 하게 된 배경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구타.욕설에 따른 자살 등 사고 방지가 그것이다. 각종 병영문화 개선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이어지자 '법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위반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을 병사들에게 주입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런 식의 대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근시안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 법률이 얼마만큼 준수될 수 있느냐다. 지금도 병사 상호 간에는 지시를 할 수 없다. 지휘권을 가진 분대장 이상만 지시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과가 끝난 후의 내무생활을 지휘자가 일일이 감독할 수 없다. 비합법적이지만 이런 관행이 흘러온 배경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병영생활을 법으로 규정하면 이런 관행을 깨는 등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후임병에게 말 한마디 잘못해 영창 가고 싶은 선임병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도 현실이다.

위반자를 어떻게 적발하느냐도 지난한 과제다. 선임병이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고집하면, 후임병이 이를 반증하기란 여의치 않을 게 자명하다. 또 그들에게 일일이 어떤 벌을 주느냐도 간단치 않은 일이다. 무엇보다 이러는 사이에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따라서 이 사안은 지휘관의 리더십 고양, 병영 환경 개선 등 군 차원의 치유 역량을 높이는 것이 정답이다. 수십만 명이나 되는 병사의 병영생활을 법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법 만능주의'에 불과한 하책(下策)이다. 법으로 정할 일이 있고 자율에 맡길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