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해돋이를 보기 위해 1일 오대산 정상에 오른 동진레저 강태선 사장과 임직원들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강태선(58.사진) 사장은 "날씨가 좋지 않아 일출은 못 보지만 각자 마음에 희망의 일출을 품자"고 말했다. 이들은 해돋이를 보려고 야간 등정을 했다. 이 회사는 7년째 이런 식으로 새해 첫날을 맞고 있다. 강 사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산에 오른다. 고객이 원하는 게 뭔지, 최근 유행하는 게 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강 사장은 73년 서울 종로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상호로 등산용품 매장을 열었다. 그의 나이 24세 때다. 그러나 그의 사업행로는 등산길 만큼이나 기복이 심했다. 오를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도 있었다. 강사장은 처음엔 동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했다. 장사를 하면서 군용 배낭.군복.워커 등이 등산용으로 팔리는 것을 보고, 등산 관련 사업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군용 배낭과 외제 배낭을 본 따 독자적으로 배낭을 만들어 버너.코펠 등과 함께 팔았다. 장사는 그럭저럭 됐지만 돈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외상 거래를 하다 보니 돈을 떼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75년 부도를 냈다. "그해 결혼했는데 전세 보증금까지 날렸다. 신혼생활을 여인숙에서 해야 했다"고 강사장은 회고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각오들 다진 그는 이듬해 '프로 자이언트'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재기에 나섰다. 그러나 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터지자 등산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등산 용품이 팔릴 리 없었다. 관련 업체 둘 중 하나꼴로 문을 닫았다. 버티니까 활로가 열렸다. 81년 통행금지 해제 조치로 야간산행이 가능해지면서 물건이 날개돋힌 듯 팔렸다. 강 사장은 "등산화건, 배낭이건 모양만 갖추면 무조건 팔렸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등산 의류가 일상복으로 입기에도 편하고 쾌적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등산의류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2000년만 해도 100억원대에 머무르던 동진레저의 매출도 지난해 8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동진레저의 제품 대부분은 국내에서 생산된다. 중국에선 일부 제품만 주문생산하고 있다. 강 사장은 "등산의류도 이젠 디자인과 소재로 승부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직은 중국산 품질이 국산보다 떨어지지만 3~4년 뒤면 쫓아올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동진레저는 2005년 업계에선 처음으로 17명의 인력으로 짜여진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했다. 강 사장은 "매출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차진용 기자<chaj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