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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내 아들 … 사회가 안아줘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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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 전주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유천희(48)씨에게는 '아들'이 많다. 법무부 범죄예방위원으로 있는 유씨는 절도 등을 저질렀던 아이들을 사실상 아들로 맞아들였다. 2000년 이후에만 15명이 넘는다. "중학교 때 수업료를 못 내 퇴학당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형편이 어렵거나 방황하는 아이들이 남 같지 않아요. 고아원 아이들을 돕다 자연스럽게 청소년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됐죠."

이 중 7명은 현재 유씨가 사는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다세대 주택의 다른 방 한 칸에서 공동생활을 한다. 수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붙잡힌 대철(16.가명), 리니지 게임 아이템을 팔겠다며 돈을 받고는 아이템을 주지 않아 붙잡힌 상수(18), 오토바이를 훔치려던 민기(16) 등이다. 이들은 가출했거나, 부모의 이혼과 사망 등으로 집이 없다.

"사실 그동안 거쳐간 아이 중에는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관심을 보이면 스스로 마음을 잡고 사는 아이가 더 많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생활 하는 애들을 보면 뿌듯해요."

요즘 유씨는 마음이 들뜬다. 과거 고아원을 통해 알게 된 아이들까지 포함해 40여 명이 유씨의 집을 찾거나 반가운 연락을 해오기 때문이다.

"이번달에는 같이 사는 아이들과 부안으로 조개잡이를 가려고요. 정말 재미있겠죠?"

#2. 울산에 사는 태우(16.가명)는 4월에 있을 고입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학원수업이 끝나면 '아저씨' 박봉준(50)씨가 운영하는 문구점에서 물품 정리 등 아르바이트도 한다.

2남 중 맏이로 태어난 태우는 세 살 때 아버지의 심한 주벽으로 부모가 이혼한 뒤 동생과 함께 복지시설을 전전해야 했다. 2004년에는 오토바이를 훔치다 붙잡혀 특수절도 혐의로 부산지방법원 가정지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이때 만나게 된 사람이 대형 문구점을 운영하는 박씨. 지난해 2월 태우와 만난 박씨는 검정고시 준비에 필요한 학원비 전액을 지원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문구점에서 일하도록 했다.

"아저씨가 해준 말 중 '단정하게 하고 다녀라'는 말이 제일 고마웠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말이 뭐 그리 고맙냐고 하겠죠. 하지만 고마웠어요."

박씨는 자신이 태우에게 해준 것은 참고서 몇 권 사준 것밖에 없다고 말한다. "애들이 다 그렇잖아요. 잠깐의 실수로 그런 거지요. 과거는 과거인데 그런 이유로 마냥 놔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박씨는 '일하지 않고 그냥 주기만 하면 공짜로 받는 것이 습관이 돼 노력을 안 하게 된다'는 생각에서 태우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도 제안했다고 한다.

대학생 등 자녀가 셋인 박씨는 "내 자식만 잘되면 뭐합니까. 이웃이 잘돼야 나도 잘되죠"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범죄예방위원으로 일해 온 박씨는 태우 외에도 두 명의 아이를 보살피기도 했다.

#3. 의정부에서 보일러 대리점을 20년간 운영하다 자수성가해 철강 관련 중소기업 대표가 된 정의연(49)씨. 2001년부터 범죄예방위원으로 활동하다 민석(18.고3)을 2005년 12월 만났다. 민석이는 아버지가 구두를 수선하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도둑질을 하다 붙잡혀 보호관찰처분을 받게 됐다.

정씨는 민석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집요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민석이의 고민이 뭔지,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도 듣게 됐다. 또 민석이를 집으로 초대해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시절과 어떻게 현재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젊었을 때 방황은 누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방황을 잘 끝낼 수 있게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정씨는 사회생활을 배울 수 있도록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민석이에게 마련해 줬다. 이후에도 만두 등 간식을 갖고 가거나 고용주에게 민석이의 장점을 이야기해 직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아직도 상담과 멘토가 필요한 애들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애들을 미약하지만 돕고 싶어요."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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