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호근칼럼

정해년 일출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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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그것은 장관이었다. 밤새도록 뒤채며 열기를 다스리느라 검게 숨죽인 바다 위로 활시위 꼭지만 한 붉은 색채가 척후병처럼 촉각을 세우더니 어느새 둥근 발광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바다는 해룡의 알을 토해내듯 해를 산파했다. 정해년의 첫 태양이 떠오른 것이다. 흐르는 시간에 어디 마디가 있으랴만, 매듭을 짓고 갈피를 접고 싶은 심사는 고달프게 달려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일반적 정서일 게다. 돌이켜 본 세상은 언제나 까마득하고, 지나온 길은 굽이마다 털어야 할 얘기를 손때 묻은 가구처럼 간직하고 있음을 알 것도 같은 나이에, 첫 해돋이를 구태여 맞아야 한다는 조바심은 어디에서 발원한 것인지.

섣달 그믐에 지긋이 있지 못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 것이 후회로 돌아올 즈음, 강원도 원통 산자락에 겨울바람 맞으며 점등하던 민가 불빛이 일순 위안으로 다가온 것만 해도 그렇다. 시간이 역사가 되는 것은 저 불빛이 하나 둘씩 모여 아쉬움과 보람을 서로 나눌 때일 것이다. 역사가, 시대가 별것인가.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한 저 불빛들이 제 몸 태우며 어둠과 대면하는 시간의 사연들, 발설되지 못한 채 여전히 발설을 기다리는 응어리진 시간들인 것을. 그래서 지난해를, 지난 시간을 쉽게 접지 못한다. 묻어야 할 소망이 또 겹겹이 쌓일 터에 털어내지 못한 말들을 사람들은 이렇게라도 달래야 하는 것이다.

태백의 산줄기를 몇 굽이 넘어 느랏재를 통과했다. 산굽이마다 숲을 이룬 낙엽송이 벌거벗은 채 환영과 배웅을 반복하는 사이, 인제와 원통을 지난 길은 여전히 동쪽으로 가파르게 뻗어 있다. 426년 전, 이 길은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던 송강 정철(松江 鄭澈)이 해돋이를 보러 우개지륜(羽蓋芝輪)을 타고 넘던 한계령. 인간이 미물인 듯 넘는 것을 거부하는 한계령을 헐떡이며 올라서면 비로소 떠나온 길과 지난해의 기억들이 갈피로 접히고 마디로 맺어진다. 그제야 비워진 마음 한 켠에 일출을, 시간의 새로운 시작을, 여유롭게 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해돋이는 낙산사 의상대를 당할 곳이 있으랴. "낙산 동녘 언덕 의상대에 올라앉아/ 일출을 보리라 밤중에 일어나니/ 상운(祥雲)이 피어나는 듯 육룡(六龍)이 버티는 듯" (관동별곡), 그렇게 느꼈던 송강 정철의 심상을 마음속에 옮겨 놓는 것만으로도 정해년을 맞을 준비는 된 셈이다. 새해와의 대면식을 꼭 이렇게 야단스럽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해년이 여느 때와 같지 않다는 예감이 그것을 용인한다. 지난해 병술년만 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말들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결단을 요하는 국가 현안들이 폭죽처럼 터졌던 터에, 아직 결재되지 않은 쟁점들이 고스란히 새해로 이월돼 분쟁의 검은 연기를 예고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기에, 새 지도자를 추발(抽拔)하는 환국(換局)이 어디 조용한 적이 있었던가? '비주류의 주류'가 어찌하니 틈새를 비집어 승기를 잡자는 야바위류 권력담론이 난무할 정해년 환국을 무탈하게 넘기려고, 부임 몇 개월 뒤에 다시 유배 간 정철처럼 백양 숲에 누워 "가랑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자할꼬"(장진주사.將進酒辭) 탄식하며 술잔만 기울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상서로운 구름과 바다 안개를 뚫고 떠오른 저 정해년의 첫 해를 마음속에 실컷 담아두는 것도 과하지 않다. 돌아서는 발길이 가벼워지기만 한다면. 그러나, 여전히 귀로는 아득하다. 아무리 작심을 하고 첫 해돋이로 마음 한 켠을 밝혀도, 동인과 서인 간 권력분쟁의 독기가 까마귀 울음처럼 번지는 조정을 두고 읊은 정철의 시조 한 수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어와 동량재를 저리하여 어찌할까/ 헐고 뜯겨 기운 집에 말들도 많고 많다/ 뭇 목수 먹통 자 들고 허둥대다 말려는가." 보혁투쟁과 이념혈통 시비가 새로운 시간을 오염시킬지 모르기에. 민주화 세력에 대한 절망감이 또 어떤 충동질과 세몰이로 표출될 것이며, 그것은 향후 10년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얼마나 더 상처를 주고받아야 '실용과 타협'을 귀히 여길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귀로를 무겁게 만든다. 송강 정철이 해돋이에 희망을 실어 보낸 지 12년 후 조선은 수백 척의 일본함대가 쏟아놓은 50만 왜군에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정해년 첫 일출에 건 염원이 헛되지 않기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