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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 전 유엔 총장, 반기문 총장에게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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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반기문(사진 (右)) 새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을 잘 아는 사무총장이니 북핵문제 해결에 적임이다. 그러나 객관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左) 전 유엔 사무총장은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반기문 신임 총장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지난해 말 이집트 카이로에서 만난 그는 또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의 대표다. 한국인들은 한국적인 문제로 그에게 지나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5년 임기를 마치고 1996년 유엔을 떠났지만 아직도 세계평화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반 총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마디로 적임자다. 외교적 경험도 많고 경솔하거나 즉흥적이지 않은 아주 성실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뛰어나다. 각국의 이해와 갈등이 존재하는 유엔 무대를 잘 이끌 외교관이다."

-현재 북핵이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인데.

"한국인에게는 큰 행운이다. 북한 문제에 깊은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무총장이 유엔을 맡았기 때문이다. 남.북한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면 양국 모두에 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 북한을 잘 다룰 수 있는 국제 지도자가 있기 때문에 유엔으로서도 북한과 이란 핵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다."

-한국인들도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반 총장에게 한국 국민이나 정부 모두 지나친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반 총장은 이제 국제 외교관이다. 사무총장 자리는 객관성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여러 대표와 협의해 합당하게 마련된 결정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유엔 총장은 자신의 나라가 잘못했을 경우에도 국제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높은 권위가 유지된다."

-반미 기치를 들고 있는 일부 제3세계 국가가 한.미 동맹을 문제 삼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외교장관 시절에도 반 총장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안다. 최강대국인 미국과 가까운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문제 해결에 미국의 협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반 총장은 이 점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여론도 잘 수용해야 한다. 불이익을 당하는 나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이 유엔이기 때문에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유엔이 현재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안은.

"내가 속한 중동 문제다. 지금도 소말리아 내전이 에티오피아가 개입한 전면전으로 확대하고 있다. 수단의 다르푸르에서도 내전이 진행 중이고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이라크 상황도 불안정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수백만이 재앙을 겪고 있기 때문에 유엔이 신속하게 개입해야 한다."

-반 총장이 유엔 개혁 문제도 공약으로 언급했는데.

"잘할 것으로 믿는다. 당장은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유엔이 제대로 기능을 하고 국제사회 최고 외교관인 사무총장이 진정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충족돼야 한다. 우선 유엔 내 실질적 파워인 미국의 입장 변화다. 현재의 독단주의가 아닌 다자주의를 신봉하는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길 바란다. 윌슨.루스벨트와 같은 지도자다. 미국 외에 다른 강대국도 이젠 본격적인 기여를 해야 한다.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인도, 브라질 등이 국제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유엔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유엔은 국제 기구다. 한 나라가 좌지우지하지 않는 민주적 유엔이 바람직하다. 강대국과 개발도상국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야 한다. 개혁과정에서 강대국과 개도국 모두에게서 심한 저항에 부닥칠 수 있지만 '민주적인 세계화(democratization of globalization)'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유엔이 돼야 한다. 반 총장이 이런 목표를 앞세워 임무를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 강한 유엔을 만드는 반 총장을 기대한다."

◆ 부트로스 갈리=1922년 이집트의 유명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했다. 카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국제법을 공부해 4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카이로 대학 국제학부에서 28년간 교수로 재직하다 77년 대외협력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14년간 장관을 지낸 뒤 91년 외교담당 부총리에 올랐으며 92년부터 96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 6대 총장으로 연임에 나섰지만 미국의 반대로 재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유일한 사무총장이 됐다. 현재 유네스코의 민주주의와 발전에 관한 국제토론단 회장으로 있으며, 2004년 출범한 이집트 국가인권위원회 의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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