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고수·개방 갈림길에/통일원이 밝힌 「사회주의 4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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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례없는 장기집권 「주사」통해 사상통제/국제고립·경제난 심각… 대남 노선 불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9일 개막됐다. 올해로 46년을 맞는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커다란 변화의 와중에 있어 그 변화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김일성의 79회 생일(4월15일)을 맞아 통일원이 최근 작성한 자료를 중심으로 북한 46년을 돌이켜본다.<편집자주>
공산권국가 가운데에서도 장기통치자였던 티토가 35년,스탈린이 31년,모택동이 27년,차우셰스쿠가 24년동안 집권했음에 비추어 김일성의 장기집권은 근대정치사상 유례가 없다.
1인 장기지배라는 안정적 통치구조는 정권초기부터 연안파·소련파들의 정적을 제거하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초기가 「숙청」을 통한 정치안정 구축시기였다면 정권중반기 이후에는 「주체사상」이 체제안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55년 12월 당 선전·선동원대회의 김일성 연설에서 처음 등장한 「주체사상」은 중 소 분쟁이 격화되어가는 와중에서 외교중립노선 유지 및 실리추구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지침으로 작용,장기집권을 위한 사상적 수단으로 이용됐다.
70년 이후 김일성의 1인통치는 아들 김정일에게로의 권력세습과 연결됨으로써 북한을 「김일성 왕조」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친·인척에 의한 통치기구 장악,구호문헌발굴 등을 통한 충성교양강화,김정일에게까지 확대된 충성행군·성역조성 등이 그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통치기반을 바탕으로 북한 건설초기에는 「사회주의적 개발도상국」으로 꼽힐 정도로 성장을 이룩해냈다.
정부의 비공개통계가 밝히는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70년대까지만해도 한때는 20%를 웃도는 성장을 이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복구 3개년계획(54∼56년),5개년계획(57∼60년·4년만에 달성),제1차 7개년계획(61∼70년·3년 연장실시),6개년계획(71∼76년) 등은 이같은 성과를 가능케한 계획이었다.
이러한 축적을 바탕으로 북한은 80년 10월의 노동당 제6차대회를 통해 『소유제도를 협동적 소유(공유)에서 전인민적 소유(국유)로 전환해 나가는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달성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같은 성과는 80년 초반부터 무너지기 시작,90년대 초반에는 「경제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78∼84년기간을 목표로 수립됐던 제2차 7개년계획은 「성과의 미비」라는 이유때문에 3년의 조정기간을 둘 수 밖에 없었고 87∼93년사이의 계획인 제3차 7개년계획도 현재로서는 목표달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최근의 방북자들은 이같은 사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91년 3월 방한한 중국관리는 『주체농법의 실패,기계화·화학화의 부진에 따른 연속흉작 및 중·소 내부사정에 의한 대북 식량지원의 감소 등으로 북한의 식량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북한의 실정을 말했다.
『북한이 90년 이후 「하루 두끼먹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90년 방북 재미교포),『쌀과 잡곡을 평양은 3대 7,농촌은 1대9로 배급하고 있다』(최근의 방북자)는 말도 있으며 중국에 와 있는 북한유학생들은 금년 1월 『지난해 가을 김장용 배추의 배급이 예년의 60㎏에서 20㎏으로 줄었으며 그나마 양념이 없어 백김치를 담갔다』고 말했다.
외교면에서 북한은 60년대의 자주외교노선을 통해 중·소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양측으로부터 실리를 얻어내는 「줄타기 외교」를 성공시켰고 향상된 경제력을 배경으로 70년대에는 비동맹그룹의 맹주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동구권의 붕괴와 한 소·한 중 관계개선이라는 북방외교의 충격파,중 소의 실리외교에 따른 지원감소 등은 북한으로 하여금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이라는 몸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눈에 띄는 대미 유화자세,적극적인 대일 외교수립 움직임 등은 북한이 점차 「두개의 한국」이라는 현실을 수긍해 나가는 증거다.
대남 노선에서의 완고성은 거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60년대초 남조선혁명의 실천적 조치로서 제시한 북한의 혁명기지화,남한의 혁명역량강화,국제적 혁명지원 역량강화라는 3대혁명 역량강화틀에는 아직 이렇다할 변화가 없다.
다만 최근에는 북한의 내부사정,남한의 민주화진전,국제적인 탈냉전분위기 등으로 인해 3대혁명 역량강화전략에도 변화가 야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우리식대로」의 노선에 따라 고립과 침체의 늪에 빠지거나 개방을 통한 공존의 길로 합류하는 두가지 길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할 기로에 서있다.
하나의 조선,남조선해방 등의 정치용어에서 무게가 빠지고 주민들의 「먹는 문제에 대한 불만」,방북자들을 통해 늘어나는 외부정보 유입 등은 북한을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요소다.
다만 개방·개혁이 김일성정권의 붕괴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이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더욱 딜레마에 빠져들 것이다.<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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