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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 모두 대통령이 뽑겠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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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중 일부를 국회의 추천을 받아 선임하겠다던 정부 방침이 백지화됐다. 대신 방통위원 5명 중 2명을 관련 단체들이 추천한 여러 명 가운데 대통령이 고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방통위원 5명 모두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기존안과 사실상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정부는 28일 김영주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회의를 열어 이를 확정하고 내년 1월 3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상정키로 했다. 차관회의에서는 방통위를 중앙행정기관으로 보면서 국무총리 지휘감독을 받지 않도록 한 것과, 국무총리에게 관련 법안 제출권을 부여하는 것은 현행 법체계와 맞지 않다고 보고 다시 수정키로 했다. 방송위원회는 이날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입법안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코드 임명 고수=5일 국무조정실이 방통위원 5명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토록 하는 내용의 방통위 설치법 입법예고안이 발표되자 각계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대통령의 방송 장악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비판을 견디지 못한 국무조정실과 방통융합추진위는 결국 15일 다시 회의를 열어 위원 일부를 국회에서 추천받기로 했다. 융합추진위 지원단장인 박종구 국조실 정책차장은 "시민단체의 추천은 없으며 국민의 대표성을 갖는 국회의 추천을 받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런데 보름도 안돼 다시 입장이 바뀌었다. 위원 후보를 추천할 단체나 절차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행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국조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방송과 통신 관련 단체는 4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추천 단체 선정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전남대 주정민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위원 구성절차를 법에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으로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이 뽑겠다는 것과 같다"며 "대통령이 전원 임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피해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 "국회 못 믿겠다"=정부가 국회 추천권을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김영주 국조실장은 "국회 추천을 받으면 정파적 이해관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그러나 "시민단체는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전남대 주 교수는 "중앙행정기관 운영을 책임지는 차관급을 뽑으며 관련 단체 추천을 받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관련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구의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 방송위 "법안 반대"=방송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방통위 설치법안을 심의할 차관회의와 29일 열리는 국무회의에 불참키로 결정했다. 조창현 방송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하는 방통위 설치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차관회의에 상정된 법안이 당초 검토된 취지와 달리 방송의 독립성을 거의 보장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합의제 기관의 원리도 심히 훼손한 물리적 기구 통합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방송.통신 융합에 따른 관련 법제 정비 및 산업구조 개편, 기구 개편 등은 범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며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현철.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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